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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찬 Aug 27. 2024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올림픽 대로는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관람을 하듯 정지 상태다.


가끔씩 가다 서다 하면서 디스크로 고생하는 오른쪽 발로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고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월간 미팅이 있어 오전 8시 30분 전까지는 출근해야만 한다.


이 날이 너무 싫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미팅 때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마저 업데이트하느라 새벽까지 일해서 잠을 2~3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핸드폰 앱에서 CBS TV를 다운로드해 장경동 목사님의 설교 강의를 듣기 위해 한쪽 귀만 이어폰을 끼고 듣고 있었다. 내 직장은 문래역 근처에 있어 월요일에는 재수 없이 출근시간에 걸리면 약 2시간씩이나 걸린다. 차 막힌 시간을 피하기 위해 새벽 5시 40분쯤에 집에서 출발했지만 올림픽 대로는 말 그대로 올림픽을 보러 가기 위한 자동차 행렬 인양 길게 너부러져 있다. 이제 여의도를 지나고 있다. 아이폰의 광고만 오늘도 어김없이 흐린 어둠 속에 의기양양하게 밝게 빛나고 있었다.


눈이 스스로 감긴다. 항상 졸음운전은 있었던지라 오늘도 슬기롭게 기민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눈꺼풀이 아래로 부드럽게 내려가며 잠시 후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현실인가 잠깐 생각은 했지만 이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은 다시 올라갈 줄을 모르고 있다. 똑똑하는 소리가 내 왼쪽 귀에서 들린 후에야 비로소 현실이구나 깨달으며 창문을 내렸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앞차의 범퍼를 살짝 부딪친 사고였다.


"그래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


내가 한국을 떠난 이유는 명백하다. 그러나 나의 삶에 대한 태도는 참으로 모호했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뚜렷해졌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드디어 연료 부족 시그널이 빨갛게 변해버렸다. 다시 봤을 때는 없어졌다. 그러고 나서 또 생겼다. 본능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큰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다.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내 코와 입과 눈으로 다시 들어간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콧물은 손으로 훔치면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더워서 열은 창문 밖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아마 내가 태어났을 때 첫울음도 이와 같은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내 차의 높이 정도의 중앙 분리대로 인해 유턴은 꿈에 꾸지도 못하고 있었다. 프로페셔널처럼 유턴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왼쪽으로 질주할 틈을 찾고 있었다. 그 순간 먼 곳에 검은 색깔의 벽이 보였다. 모두 하얀색의 벽인데 유독 그 부분만은 어두웠다. 점점 더 가까이 보이고 있다. 그건 벽이 깨진 틈이었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이 있었구나! 벽의 일부분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린 흔적으로 주위에 어지럽혀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있었다. 내 뒤의 차량을 볼 생각도 없이 급하게 속력을 줄여 유턴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반대 차선의 차량들이 나에게 달려오는 것을 유턴한 후에야 비로소 생각이 났다. 경적을 올리며 내 뒤에 눈부시게 쌍라이트를 쏘아댔기 때문이다.


살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의 소리로 내 모험적인 행동에 칭찬을 하고 있다. 얼마 안 가서 기쁨은 잠시. 연료가 바닥이 나 빨간색의 연료 시그널은 더 이상 변하지 않고 있었다.


깜깜한 밤이 돼서 가족이 더 보고 싶었다. 가족이 도와준 덕분인지 모르지만 멀리서 휴게소가 나에게 어서 오라고 더 조명을 밝게 빛내고 있었다.


이제 차가 갑자기 정지해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잽싸게 갓길에 주차하고 걸어서 연료를 사 올 거리는 된 듯싶었다.



 스티브 도나휴가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경험을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의 책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책 첫 장에 사하라 사막 여행을 끝내고 한 달 만의 샤워를 고대하며 서 있는 저자의 사진이 생각났다. 나도 집에 가면 아부다비 여행을 끝내고 하루 만의 샤워를 고대하며 서있는 내 사진을 찍고 싶다.





웃음이 나오면서 다행스럽게 주유소 간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대기 차량 없이 바로 휘발유를 넣었다.


 "Fill'er up, please!"(만땅이요!)


그리곤 난 심한 어지러움을 느낀다. 주유소 직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에게 다시 오며 말을 걸어온다."Please open the fill cap" ( 주유구 뚜껑 열어 주세요)


기름을 가득 채우니 내 배를 채울 차례가 됐다. 소변이 엄청 마렵다는 게 생각나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급하게 주차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지퍼를 화장실 문을 열기 전에 미리 내리고 소변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내 몸속에 있는 모든 걱정거리와 근심, 스트레스가 서로 먼저 나가려고 힘차게 분출하고 있다.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아까 그 책에서 6 가지 방법 중에 지금은 이것만 생각이 난다. 난 바람을 빼고 있다.


끝없는 사막에서 난 한 알의 모래알처럼 나약한 존재일 뿐 이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정직하다면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면 갇힌 사막의 모래에서 벗어날 수 있듯이 막힌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도 경험을 했다.


생리적 현상이 해결하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탈수 현상이 일어나며 목이 건조해져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중동 음식은 아직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제일 흔하고 그나마 중동 음식보다는 덜 싫어하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 2개를 주문했다. 콜라 먼저 원샷하려는데 얼음이 너무 치아를 차갑게 해 사가 들렸다. 기침을 연거푸 하며 빨리 먹고 싶은 햄버거를 들어 기침이 안 나올 기회를 엿보아 한 입 크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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