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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삶이 나에게 묻다

아라비안 나날들

by 김민찬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모두 숨어버린 듯하다. 깨알 같은 모래만 이어지는 흰 사막을 본 지도 세 시간이 넘었다. 오후 여섯 시를 훌쩍 지났지만 빛은 여전히 눈을 찌른다. 여기서는 선글라스 없이는 심봉사다.

직진만 두 시간째. 크루즈 기능도 없는 차라 핸들을 꽉 쥐고 전방을 붙들고 간다. 신호등도, 사거리도 없다. 이곳 내비게이션은 한국처럼 친절하지 않다. 건설 현장이 수두룩해 구글맵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예고 없이 트럭 전용 도로로 빨려 들어간다.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고객을 만나러 가며 주소를 세 번은 확인했다. ‘AL RAUD 37.’ 분명히 입력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다. 보통은 고객이 위치 핀을 보내 주지만, 찾기 쉬울 거라 안일하게 넘긴 내가 원망스럽다. 연료도 이제 한 칸. 유턴도 좌·우회전도 없이 직선 도로만 이어진다. 앞에는 “SAUDI ARABIA 385 KM”라 적힌 녹색 표지판만, 차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속도를 재촉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휴대전화 배터리가 차량용 충전기 덕분에 100%라는 것. 아직 회사엔 연락하지 않았다. 고객에게는 길을 잃어 내일로 일정을 미루자고 통보했다. 하지만 연료가 바닥나면? 이 사막 한가운데서 멈춰 서면? 갑자기 겁이 확 밀려온다.

8월의 열기는 잔인하다. 에어컨을 끄자 5분도 안 돼 차 안이 가마솥이 된다. 땀이 국물처럼 흘러 내리고, 뜨거운 바람은 창문을 여는 순간 숨통을 조인다. 다시 창을 닫고, 에어컨을 1단으로만 켜고, 송풍구 앞에 머리를 들이민다. 그래도 더운 건 마찬가지다. 회사에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임만 커진다. 땅거미가 내려앉자 두려움도 배가된다.




결국 휴대전화를 꽉 움켜쥐고 동료에게 전화를 건다. 상황을 차분히 정리해 전하려는데, 통화음만 길다. 끝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자 허공에 뜬 내 말들도 함께 잘려 나간다.


목은 타들어가고, 물 한 방울 없는 500ml 생수병을 몇 번이나 흔들었는지 모른다. 배고픔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배고프지 않아야 한다. 피곤하지만 눈은 커지고, 몸은 초집중 상태로 굳는다. 사우디 접경까지 간다고 치자. 지금 남은 거리는 218km. 연료는 한 칸의 반도 채 안 남았다. 예전에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멈춰 선 경험이 떠오른다. 핸들이 흔들리다 잠기고, 그대로 선다. 그래서 오른쪽 가장자리로 붙는다. 여긴 편도 1차선이라 비포장 갓길로 내려서야 하는데 경사가 만만치 않다. 연료 경고등이 언제 켜질지, 계기판만 힐끔힐끔 훔쳐본다.


“나는 살아야 한다.”


살아 한국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야 한다. 나는 왜 한국을 떠났던가. 인생의 참뜻을 찾겠다며 이 먼 중동까지 와버렸다. 각박하고 허허로운 일상을 잠시 접고 낯선 땅에서 다시 살아보려 했다.


그런데 지금, 생존의 의지가 뜨겁게 타오르며 새 질문을 던진다. 더는 삶에게 의미를 묻지 말라고. 오히려 삶이 내게 답하라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해졌다. 나만의 유일한 이유가 생겼다. 살아 돌아가 가족을 만나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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