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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by 김민찬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올림픽대로는 오늘도 자동차 극장처럼 정지 상태다.
가끔 움직였다 서기를 반복하고, 디스크로 고생하는 몸을 이끌어 오른발로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는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오전 8시 30분까지 월간 미팅. 이 날이 특히 싫다. 하필 발표 자료를 새벽까지 업데이트하느라 잠은 2~3시간이 전부였다.

CBS TV 앱을 내려받아 장경동 목사 설교를 한쪽 귀로 들으며 운전한다. 내 직장은 문래역 근처. 월요일에 운이 나쁘면 출근만 두 시간이 걸린다. 길 막힘을 피하려고 새벽 5시 40분에 집을 나섰지만, 올림픽대로엔 말 그대로 올림픽을 보러 가는 듯한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다. 여의도를 지난다. 흐린 어둠 속, 아이폰 광고판만 의기양양하게 빛난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졸음운전은 예전에도 겪었고, 어떻게든 버텨냈다. 오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눈꺼풀이 부드럽게 내려가고, 잠시 뒤 “쾅” 하는 소리. 꿈인가, 현실인가. 다시 눈이 감기려던 찰나, 왼쪽에서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깨어 유리를 내렸다. 앞차 범퍼를 살짝 들이받은 접촉사고였다.

“그래,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

내가 한국을 떠난 이유는 분명했다. 다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늘 모호했다. 그런데 이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연료 부족 경고등이 빨갛게 켜진다. 잠시 꺼지더니 다시 켜진다. 살아야 한다고, 본능이 소리친다.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코와 입, 눈으로 다시 흘러들어간다. 눈은 제대로 떠지지 않고, 콧물은 손등으로 훔친다. 열기와 울부짖음은 열린 창밖으로 흘러나간다. 어쩌면 내가 태어났을 때의 첫 울음도 이랬으리라.

중앙분리대 높이 때문에 유턴은 꿈도 못 꾸던 참이었다. 프로페셔널처럼 유턴할 틈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왼쪽을 주시한다. 그 순간, 멀리 하얀 방음벽 사이로 유독 검은 틈이 보인다. 점점 가까워진다. 누군가, 나 같은 사람이 이미 통과한 흔적.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가 흩어져 있다. 뒤차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급히 속도를 줄이고, 유턴을 준비한다.

유턴을 마친 뒤에야 깨닫는다. 반대 차선의 차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경적이 울리고, 쌍라이트가 눈부시게 박힌다.

살았다!

잠깐 환호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연료는 바닥. 경고등은 이제 꺼질 줄을 모른다. 밤은 더욱 짙고, 가족이 더 보고 싶다. 멀리서 휴게소가 나를 부르는 듯 조명을 더 밝힌다. 차가 서더라도 갓길에 세우고 걸어갈 거리는 되겠다 싶다.


문득 스티브 도나휴의 사하라 횡단기,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여행을 마치고 한 달 만의 샤워를 기다리던 저자의 사진. 나도 집에 가면, 아부다비 여행을 끝내고 하루 만의 샤워를 고대하며 서 있는 내 사진을 찍고 싶다. 헛웃음이 나온다. 다행히 주유소 간판이 점점 커진다. 대기 차량도 없다.




“Fill ’er up, please!”(만땅이요!)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주유소 직원이 찡그린 얼굴로 다시 다가와 말한다.
“Please open the fuel cap.”(주유구 뚜껑 열어 주세요.)


연료를 가득 채웠으니 이제는 내 배를 채울 차례…였지만, 더 급한 게 있었다. 급히 차를 세우고 화장실로 뛰어들며 문 열기 전 지퍼부터 내린다. 소변기가 눈앞에 선다. 내 안의 걱정과 근심, 스트레스가 서로 먼저 나가겠다며 힘차게 분출한다.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의 공기를 빼라.”
그 책의 여섯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나는 지금, 내 안의 바람을 빼고 있다.


끝없는 사막 앞에 나는 한 알의 모래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 나약함을 인정하면, 그리고 정직하게 받아들이면,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듯 막힌 상황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내 몸이, 방금 경험했다.


급한 볼일을 보고 나니 목이 바짝 말랐다.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중동 음식은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무난한 맥도널드에서 세트 두 개를 주문한다. 콜라부터 원샷하려다 얼음에 치아가 시큰해 사레가 든다. 연거푸 기침을 하다가, 기침이 잦아들 틈을 노려 햄버거를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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