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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sion

by 김민찬


처음 두바이에 산다고 했을 때, 나는 여행 때의 설렘을 기대했다.


그러나 ‘일하러 온’ 생활 세계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 언제나 울타리 밖에서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동물원 밖 풍경을 보듯,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닌 완전한 이방자—방관자이자 구경꾼. 이제는 다르다. 일하러 왔으니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울타리 안에서 일하는, 그저 털 없는 원숭이 한 마리일 뿐. 한국에서 일하며 느꼈던 감정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된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햄버거는 처음이었다. 빵과 고기가 내 침에 녹아 목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때에서야 시간이 밤 10시 48분임을 알았다. 놓쳤던 동료의 전화. 그는 “카톡이랑 전화 이제야 봤다, 미안”이라고 말했고, 나는 길을 잃어 오늘 고객 미팅이 내일로 미뤄졌다고만 전했다. 지쳐 있어서 더 길게 말할 힘이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또 다른 귀성길 같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7개 토후국(Emirates)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움알쿠와인, 푸자이라, 라스알카이마. 사실상 부는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다. 한때 이 땅의 조상들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조개와 진주를 캐며 살았다. 어떻게 이 모래의 땅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도시국가가 되었을까.






서점마다 놓인 셰이크 모하메드의 『나의 비전』이 그 답을 힌트처럼 건넨다. 석유가 넉넉지 않은 두바이가 외자를 끌어들여 산업을 키우고, 그 이익을 사람들에게 돌려 ‘살 만한 곳’을 만든 이야기. 우리 지도자들과 닮은 듯 다른 대목들이 보인다.


그런 두바이지만 내 숙소는 경계 도시 샤르자에 있다. 두바이보다 임대료가 낮아 외국인—특히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 출신—이 많이 산다. 학기가 시작되면 대중교통 빈틈을 스쿨버스가 메우고, 도로는 주차장처럼 막힌다. 교차로는 로터리(Roundabout)여서 진입이 쉽지 않았다. 좌회전하려면 원을 돌아 빠져나가야 하는데,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차선을 붙들다 보면 직진만 하게 될 때가 잦았다.


지금도 나는 아부다비에서 샤르자로 퇴근 중이다. 구글맵 예상 도착 시각은 자꾸 늦춰진다. 내가 믿어온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운전하고 있다. 아니, 태초부터 상식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장을 보고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찾느라 두 시간을 날렸다. 계란, 생수, 주스가 든 무거운 비닐을 양손에 들고 여섯 번은 왕복했을까. 직원에게 물어도 아리송했다. 냉방조차 되지 않는 공기 속에서 내 손가락은 달군 쇠처럼 붉어졌고 감각이 사라졌다. 두 개 건물이 이어진 쇼핑몰이지만 지하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사소한 편의’였을 것들이 여기서는 생존의 변수가 된다.


결국 차를 찾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닿았다. 건물 내부 주차는 유료라 모래 위에 댄다. 구두는 금세 흰 먼지를 뒤집어쓰고, 새 차의 의미도 없다. 아침이면 검은 자동차마저 하얗게 변해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북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아이가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옆의 엄마는 바닥만 본다. 방에 들어서며 무심코 중얼거린다. “It’s been a long day.” 샤워기의 찬물 쪽으로 돌려도 물은 중동의 열기에 데워져 여전히 미지근하다. 늘 나를 기다리는 샴푸, 보디워시, 세안비누. 언젠가 소진될 것들을 볼 때마다, 소모되는 나의 하루가 겹쳐 보여 문득 쓸쓸해진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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