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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15. 2021

정체성 혼란이 가져다주는 것

마음의 병으로 시작된 정신적·육체적 고통



정체성 혼란이 가져다주는 것은
마음의 병으로 시작된 정신적·육체적 고통이다.



고통 속 몸부림치던 어느 날, 한 식당에 모여 형들과 함께 술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술안주인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깊어질 때쯤 형들이 얘기했다.
“힘들면 우리에게라도 털어놔 봐”

삶의 무게에 눌려 지칠 대로 지친 내 모습은 형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났고, 내 얘기를 들어주겠다는 형들의 이야기에 술을 한잔 털어 넣으며, 그간 생각해 온 힘듦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힘들긴 한데 뭐가 힘든지 모르겠어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나의 첫마디였다.


제가 생각하는 힘듦은 하나 이상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겹쳐져 버거워지는 것을 말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정말 내가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건, 힘들긴 한데, 뭐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비교 상대가 존재하고, 힘듦을 말하는 법보다 괜찮다고 괜찮은 척하는 법이 더 익숙해 괜찮지도 않은데 괜찮은 삶을 살아가잖아요.


다 괜찮은 건데, 왜 그게 힘든 거지 생각하게 되는 거죠.

결국은 사는 게 힘든 게 아닌데, 힘들게 사니까 힘들어진 삶이 되어버린 거고, 고생을 사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 자체가 고생이 되어버린 삶을 스스로 쌓아왔다는 거예요.

그렇게 살다 보니 주변에 말하기도 힘들고 말하는 것도 미안하고 혼자서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내게 주어진 것 같아요.

처음 힘들다는 말을 내뱉고, 여유조차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상황이 내게 올 것을 어느 정도 예감했기에 삶이 내 뜻대로 되어가지 않음을 느꼈을 때 돌아가려 노력하고, 쉬어가려 노력했지만 결국 피해가지는 못했다.


여유를 갖는다는 게 무작정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시간으로서 억지로 해결하려는 나의 태도가 조급함과 불안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워버린 것이다.

여유는 시간이 주는 게 아닌 마음이 주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못했다.


경쟁 속에서 살아나야 했고, 그 안에서 성장해야 했기에 누군가 희생을 한다면 그게 차라리 나이길 바라면서 살아온 삶은 나를 잡아먹어버렸다.


누구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인지 시작된 혼란 속에 찾은 답은 “이타적인 삶은 스스로를 가장 배척하는 삶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불안하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하고 잘 살아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배워야 하는 게 있다면 분명,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닌 잘 쉬어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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