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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Dec 21. 2018

검사 결과

12월 20일


수술 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남편과 병원에 갔다.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 동안 늘 초조했다. 즐겁게 지내다가도 왼쪽 가슴이 수시로 자기를 잊지 말라는 듯, 따끔거리며 신호를 보낼 때마다 세상이 멈추곤 했다. 괜히 몸이 뻐근하거나 뼈가 욱신거리면 ‘혹시 전이된 건 아닐까…’ 하는 나쁜 생각에 잠을 설쳤다. 그래도 오늘은 최소한 내가 사형인지 무기징역인지 임시 석방인지는 알려줄 판결은 나겠지! 하니, 이 막연함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힘이 났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교수님을 기다리는데 초조하다. 서로의 긴장도 풀어줄 겸, 웃으며 장난치고 싶은데 공기의 무게에 이미 짓눌려버린 기분이다. 시작부터 좋지는 않다. 전신 MRI 결과, 악성종양이 세 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원래 내가 알던 크기와 위치의 왼쪽 가슴 암인데 그 근처로 두 개의 암이 더 퍼져 있단다. 수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암의 위치인데, 일단 세 개 암의 위치가 좋지 않다. 극단적인 수술을 피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는데 교수님 판단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고 한다. 눈물이 났다. 곁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익숙하다는 듯 티슈를 뽑아 건넨다.     


다행히도 왼쪽 림프절에는 전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순간 너무나 기뻤다. 물속에 빠져 발버둥 치다가 가까스로 숨을 들이마신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물속으로 처박힌다. 검사 사진을 보니 오른쪽 림프도 많이 부어 있다고 오른쪽 전이 조직검사도 추가로 해야겠다는 것이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할 거였으면 13일 검사 때 다하지, 그걸 왜 이제 와서 말하는지 모르겠다. ‘필요하니까 하지 왜 하겠냐!’라고 차갑게 답하던 초음파 선생님이 생각난다. ‘필요했으면 확실히 양쪽 다 하지, 왜 한쪽만 했냐.’라고 화내고 싶다.    

 

추가 검사는 오늘 할 수 있는 건가요? 결과는요? 그럼 4일 수술은요?… 검사 일정은 나가서 외래에서 따로 다시 잡으라 한다. 결과에 따라서는 4일에 수술 못 하고 아예 항암을 먼저 할 수도 있단다. 막막하다. 암 진단받고 수술까지 지금 5주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더 수술이 미뤄지는 건 정말 견디기 어렵다.     


외래에서 추가 검사 일정을 잡았다. 추가 검사는 12월 24일, 결과는 1월 3일에 와서 들으라 한다. 남편이 말한다. 3일은 입원하는 날인데… 그럼 3일 결과를 보고 만약 수술보다 항암을 먼저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냐, 그전에 미리 알려 줄 수는 없느냐, 3일 입원했다가 아니라고 하면 다시 돌아가라는 거냐. 그러자 담당자가 당황한다.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 답답하다. 병원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 어떤 영향력도 결정권도 없는,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존재인가. 지친 얼굴로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신 병원 복도 가득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괜한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 알겠다고 답하고는 외과를 빠져나왔다.    


24일 추가 검진을 하고 3일에 결과를 보고 이상이 없다면 4일에 예정대로 수술하고 1주일 뒤 최종 기수와 치료 계획을 받고 그에 따라 방사, 항암, 항호르몬, 표적 등 수개월 치료를 한다. 또한, 유방암은 환자의 심리상태에 외과수술이 미치는 영향이 실로 크기 때문에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성형적 방법들이 절차적으로 병행된다. 나는 암 치료와 함께 병에 걸리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도 정말 많고 그 과정도 길다. 병원 상담 실장님은 최소 6개월, 길게는 2년까지도 봐야 한다고 한다.


막막했다. 엑셀로 스케줄표라도 만들고 싶었다. 파일 제목은 ‘심지혜_암극복 프로젝트_181220.xlsx’ 광고주는 컨펌하는 사람일 테니… 음, 그래 삼성의료원으로 하자. 예산은 가이드 없음. (feat. 실비보험). 기간은 2018년 12월~최소 6개월. (단, 진행에 따라 2년까지 연장 가능) 캠페인 목적은 암 환자 심지혜 씨 일반인 만들기!     


하아…… 한숨이 났다. 내가 스타가 되자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이 되자는 건데,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길게 갈 프로젝트였으면, 사전에 참여 의사라도 물었어야지, 아님 눈치라도 줬어야지. 정식 OT도 못 받고 하루아침에 강제로 시작하게 된 이 중장기 프로젝트가 여전히 난 익숙지가 않았다.     

암 환자 커뮤니티에서는 KI지수, 루미날 AB, HER2 양성, BRACA 검사, 삼중음성, 허셉틴, 온코 테스트, 탁솔, AC요법, 놀바덱스, 졸라덱스… 나만 모르는 온갖 낯설고 어려운 용어들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거기에 항암 칵테일 주사, 동결 녹즙, 온열요법, 치유테라피… 뭔지도 모를 온갖 치료 방법들도 넘쳐난다. 나의 무지함부터가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괜찮다고. 이제 시작이니까 너무 멀리 보지 말자고, 하루하루 나답게 배워가면서 천천히 걸어가 보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내가 사랑하던 그 평범한 일상으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겠지. 지금은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이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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