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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Dec 26. 2018

아 모르겠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관통한 핵심 메시지다. 이 카피는 ‘피키캐스트’ 론칭 캠페인에 위트 있게 활용되기도 했다. 나도 답을 찾고 있다. 나는 왜 암에 걸렸는가에 대한 답을.     


이병욱 교수의 《나는 삶을 고치는 암 의사입니다》라는 책에 따르면 ‘암은 국소 질환이 아니라 전신 질환이며 육체적인 질병이면서 심인성 질병이기도 하다.’라고 한다. 즉 단순히 암세포를 수술로 제거했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에 암이 생기게 한 원인을 파악해 환자의 전반적인 삶 전체를 고쳐야지, 수술 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생활하면 암은 분명히 다시 재발하게 되어 있고, 재발 후에는 암에 대항하는 면역체계가 더욱더 약해져서 결국 악성종양이 몸 전체를 잠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생을 관리해야 한다. 삶 전체를 바꿔야 한다. 하는데 사실 너무 막막하다. 뭘 어떻게 고치라는 건지를 알아야 고칠 텐데, 그게 감이 잘 안 온다. 내 기존의 생활방식이 당연히 완벽하지야 않았겠지만 나름의 자부심은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매일을 살았다. 자극적이거나 첨가물이 든 음식은 피해 먹으며 체중을 관리했다. 빵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당류를 줄이고자 흰 쌀밥은 아예 잘 먹지도 않았다. 스트레칭, 유산소, 근력 운동 섞어가며 하루 30분은 꾸준히 운동했다. 여기저기서 “이 팀은 참 분위기가 좋네요!”라는 말을 들으며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매일 참 많이도 웃었다. 늘 날 응원해주는 다정한 남편과 건강한 아이들 덕분에 화목한 가정의 아이콘으로도 살았다. 그래서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이 진짜 1도 없었다. 음? 내가 왜?


한 친구는 이거 답이 너무 쉽다고 웃는다.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암에 걸린 거란다. 힘들기로 유명한 광고대행사를 다니며 두 아들을 키우고 시댁 생활까지 하는 삶이 오죽하겠냐는 것이다. 화가 나면 화를 내야 하는데, 나는 항상 좋게 생각하려고 애쓰다 보니 그게 속에서 곪았다는 것이다. 일명 ‘홧병 논리’다. 내가 그…랬나? 자문해본다.     


난 화가 나면 화를 냈다. 의견을 전달하고 관철시키는 데 화라는 감정이 필요하다 싶을 때는 일부러라도 더 표현하기도 했다. 그것이 내 선택이었다면 위아래 할 거 없이 강하게 화를 냈다. 내가 화를 내면 팀원들은 ‘지릴뻔했다’, ‘기저귀를 차고 왔어야 했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대표님도 “너는 아닌 척하면서 니 할 말은 다하냐.”라고 종종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이 내 선택이 아니라 즉흥적인 감정에 의한 거라면 싫었다. 그런 화를 내고 나면 결국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날 곁에서 오래 지켜본 팀원들은 잘 알겠지만, 소소한 말이라도 갑자기 뾰족하게 뱉어내고 나면 자괴감이 들어 바로 사과를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자기감정에 휘둘리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져 부끄러웠다. 잠깐 멈춰 서서 화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목적이 뭔가를 생각해보고 내 선택을 통해 우회적으로 부드럽게 표현할 때 상대방도 더 잘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도 기분이 더 좋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보통의 일상에서 내가 화를 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화내기 싫은데, 일부러 낼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아니야! 넌 그게 문제야. 넌 화를 내야 한다니까? 자! 빨리 화내 봐.” (진지)

“아 싫어~ 화내기 싫다니까? 아 그만해! 자꾸 그러면 진짜 화낸다!!” (버럭)


광고대행사 일도 육아도 시댁 생활도 몸이야 가끔 힘들었지만, 마음이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심지어 난 자타공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일해야 기운이 나는 스타일이다. 아이도 셋째 딸을 낳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낳아 키우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할 만큼 아이를 좋아한다. 내 개인 핀터레스트에는 세상 사랑스러운 아기들 사진만 모아놓는 보드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내 매일의 삶에 굉장히 만족하며 산 것 같다.     


“라이어!” 친구가 비난하듯 말한다.

아, 물론 100% 내 뜻대로야 못 살았겠지. 회사라는 시스템의 목적이 있고, 가정이라는 지붕 아래 화합이 있는데, 모두와 어울려 살아가면서 그건 당연한 거고 100% 내 뜻대로 사는 걸 바라지도 않아. 전혀 힘들지 않았냐고? 아니지~ 하지만 그 힘듦이야 누구나 느끼는 삶의 무게 정도지, 그 스트레스 때문에 암에 걸렸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내 이 확고한 친구는 자꾸만 뭘 믿고 아니란다. 그럴 리가 없다. 넌 스트레스 때문에 암에 걸린 거야! 정신 차려라!! (너 어디서 돈 받았니?) 친구의 모든 논리는 기승전 스트레스였다. 나는 내가 모르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그걸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니가 더 스트레스여. 이것아…) 날 걱정하는 이 사랑스러운 친구의 마음은 물론 잘 안다. 그래서 진심으로 고맙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다 보니 답을 내려야 하는 주체로서 더 혼란스러웠다.     


내가 괜찮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아니, 넌 안 괜찮은 거야! 라고 하면,

아…… 나는 안 괜찮은 거구나! 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아 모르겠다. 이 답,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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