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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Mar 04. 2024

산책길에서 마주친 마법의 순간





앙리 4세의 눈썹을 가진 고양이


숱한 우연들이 오랜 외근을 하다 실종소식이 오보되자

지렁이는 굽은 못이 되었다.     



    학기 초 마리 크리스틴의 수업 때였다. 대학원생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와 교실 뒤에 한 줄로 섰다. 그들은 2인 1조를 이루어 교육 임상할 주제 한 가지씩을 들고 왔고, 우리 학생들은 각자 맘에 드는 주제를 택해 그들과 한 조를 이루었다. 나는 어리버리 망설이다 엉겁결에 ‘샤토château'(성)라는 주제를 택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대학원생 마농과 스테파니 그리고 내 동기 니콜라와 한 조가 되었다. 대학원생들은 빠르게 뭔가를 말하고는 우리 학생들과 메일 및 전화번호 등을 교환하고는 사라졌다. 


    그리고는 머지않아 그들의 메일을 받았다. 내 메일 계정에서는 프랑스어 철자들이 깨져서 전송되었으나 그럭저럭 해독할 수는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짧은 브리핑이었다. 내용인즉, 곧 랑데부를 갖고 같이 앙리4세와 성城에 대한 설문지를 만들어서 포의 시민들을 상대로 앙케트를 펼친다, 뭐 그런 것이었다. 








    어느 날 니코와 나는 커피머신 앞에서 마농과 스테파니를 만났다. 그들은 우리들을 빈 강의실로 인도해서는 앙리 4세의 탄생과 성의 역사를 다룬 만화를 읽게 한 다음 성 전체의 조감도를 주고는 건물 세부 명칭을 익히도록 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이런 반강제적 과외학습은 이후 두 번이나 더 이어졌다. 그들은 시제의 사용에 대한 팁도 주고 연습문제도 풀게 했다. 길 찾는 데 사용되는 어휘와 표현들을 정리해주고 나서는 지도를 주고 프랑스어로 길을 안내하고 그 안내를 따라가는 연습도 시켰다. 정말이지 그들이 준비한 내용은 성의 있고 유익하기 짝이 없었다. 헷갈리는 문법, 한 번 알아두면 두고두고 유용할 문법들도 콕콕 찍어 가르쳐줬다. 단지 미팅은 매번 길어 무척 피곤했고 더군다나 이 모든 과정이 딱히 우리의 동의도 없이 이루어졌음을 자각하고 나자 반항심이 일었다. 두 번째 미팅 전 니코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불만을 성토한 다음 뭐라도 항의를 해보자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다시 랑데부 시간이 되자 우리는 다시금 그들의 면학 분위기에 압도되어 별수 없이 착한 학생으로 돌아가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전형적인 범생이어서 이 대학원생들 입장에서는 아주 만만한 실습 대상들인 셈이었다. 그들이 주는 공부를 넙죽넙죽 받아먹은 다음 우리는 설문 문항을 이럭저럭 10개쯤 만들었다. 이때쯤 우리는 앙리 4세에 대해 반전문가가 되다시피 했다. 이제 우리는 이 설문지로 시민들의 역사 인식도를 조사하여 앙케트 분석한 내용을 최종 결과물인 칼럼의 형태로 정리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칼럼 작성하는 요령에 대한 세부자료도 받았다.


    반항을 개뿔, 결국 두 번째 미팅 후 우리는 체념한 채 그냥 그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따라갔다. 그들과의 마지막 미팅은 어느 일요일 성 주변을 탐험하는 역사기행으로 구성되었다. 말이 역사기행이지 그것은 실제로는 약간의 수행 미션이 곁들여진 멋진 산책이 되었다. 그들은 또 이날을 위하여 성의 넘치는 자료를 만들어 왔다. 나름 공들여 만든 일련의 퀴즈들이었다. 이 종이에는 각종 미션이 적혀 있어서 제시된 길을 찾아다니며 그 답을 채워야 했다. 무슨 장군의 집을 찾으라든가, 무슨 동상을 찾아 중세 복장을 이루는 전형적 액세서리 세 가지를 찾아 적으라든가, 성의 정원에서 다섯 가지 허브의 이름을 찾아내라든가, 앙리 4세의 치적들이 부조로 들어간 동상을 찾아 각 면 부조에 새겨진 내용이 무슨 사건에 일치하는지를 찾아내라 등등 따위였다.




왕의 산책길




    이 역사 행로에서 잊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우리가 이른바 ‘왕의 산책길’상티에 뒤 호와Sentier du Roy (성벽아래를 죽 따라 나 있는 앙리4세의 산책길. 호와Roy는 왕을 뜻하는 후아roi의 고어)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어느 집 창가에 희한한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흐릿한 날씨를 배경으로 새하야니 앉아 있었는데 세상 살다가 그렇게 생긴 고양이는 처음 보았다. 온몸이 하얗고 눈썹만 따로 숱으로 그려 넣은 듯 검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사람 같은 눈썹이었다. 눈썹만 아니라면 그저 그렇고 그런 길고양이라 여겼을 것이다. 미국의 자기 집에 무려 13마리 고양이와 살아온 니코도 그 고양이를 신기해했다. 


    꽤 추웠던 이 날, 마농과 스테파니는 순순히 잘 따라와 준 우리에 대한 일종의 보상처럼 성 옆 크레페 가게에 데려갔다. 자리에 앉으면서 가게 벽에 걸린 앙리 4세의 초상화에 저절로 눈이 갔는데 우리는 동시에 깜짝 놀랐다. 앙리 왕의 눈썹은 정말 독특했는데 그 형태가 하필이면 아까 왕의 산책길에 나타났던 고양이와 똑같았던 것이다. 이런 우연이!! 우리 넷은 앙리의 혼이 잠시 고양이에게 깃들었니 뭐니 떠들어댔다. 그다음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종종 앙리 4세의 눈썹을 가진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미스터리한 느낌은 직접 본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서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리 장황한 설명을 곁들인들 잠꼬대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각각의 개인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하나 타인에게는 번역되기 힘든 마법의 순간들이 있다. 이런 미스터리들이 고스란히 삭제된 삶이란 얼마나 삭막한 것일까?




    맛난 크레페와 시드르(크레페와 궁합이 맞는 사과주)를 곁들이며 우리는 처음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마농은 짧은 방학을 맞아 고향에 다녀올 건데 부모님 댁에만 다녀오면 어찌나 먹여대는지 마구 비육되어 온다고 했다. 스테파니는 이탈리아 남편을 둔 아이 엄마였다. 이들의 발음은 학기 초에는 알아듣기 퍽 힘들었으나(대학원생들은 선생님들보다 말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크레페를 먹을 즈음에는 어느 정도 이미 적응되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사교적인 자리가 절대 편하지만은 않은 나는 이 훈훈하게 어색한 자리를 가까스로 지켰고, 대신 옆에 앉은 니꼬가 시종 상냥한 표정에다 적당한 스피드와 리듬으로 대학원생들과의 대화에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똑똑한 니코는 장래 꿈이 저널리스트여서 포에 머무는 중에도 자기 학교 신문에 기사를 써대고 있었으니 대학원생들은 그들의 성과물이 될 니코의 칼럼에도 기대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진지했던 니코는 끝까지 신의를 지키지는 못했다. 우리는 칼럼을 방학 시작 후 3일까지를 기한으로 대학원생들에게 제출하기로 했었으니 바로 이 기한이 함정이었다. 대학원생들이 소기의 교육의 열매를 수확하려거든 이 기한을 어떻게든 방학 이전으로 잡아놨어야 했다. 왜냐하면 니코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떠나기 때문이었다. 대륙을 건너가 버리는 마당에 이런 성가신 리포트가 대수이랴. 결국 니코는 그냥 훨훨 날아가 버렸다.


    니코가 떠나기 며칠 전 눈 오는 밤 ‘가라주Garage’라는 바에 다 같이 모였다. 이때 니코와 나눈 대화를 통하여 우리가 다른 조보다 훨씬 빡센 작업을 해왔으며 칼럼 쓰기까지 숙제로 부과 받은 조는 우리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어이가 없어져 니코와 나는 키들거리며 얼굴을 마주 보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기 때문이지!” 


    우리는 대학원생들의 교육 임상의 먹잇감으로 '낚였음'에 동의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상적인 학생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취학연령 이후 나는 숙제 강박을 갖고 살아왔는데 이런 나는 그렇다 치고 니코 역시도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성실성에 있어서 내게 뒤지지 않았다. 낼모레 미국으로 떠나는 마당에 심지어 다음 학기 반 배치 시험을 치르기조차 했는데 이게 단지 자신의 발전을 체크해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가공할 일이었다. 


    니코는 떠나갔다. 나는 학교정원에 무리지어 앉아 있던 역사 전공 학생들과 그 외 몇 명에게 마구잡이로 설문 조사를 해서는 그 결과를 거의 장난처럼 분석해 칼럼을 썼다. 설문 답들을 보니, 행색만큼은 고풍스럽고 진지한 역사 전공 학생들조차도 실제로는 앙리 4세와 성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서 답은 제각각 각자의 상상과 버무려진 것들이었다. 게다가 불과 10명 남짓한 설문이 무슨 유의미한 결론을 입증할 것인가. 어차피 순전히 글쓰기 연습일 뿐이었다. 그래도 꽤 신경 써서 칼럼을 만들어 보냈는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친절한 그들은 세심한 설명을 곁들여 수정해서는 메일로 보내 주었다. 그 학기 이후 더이상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전해 듣기를, 모든 과정을 마치고 스타주(실습)를 하러 멀리 떠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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