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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28. 2019

여름 산책의 풍경

    방학이라 매일 산책을 할 수 있어 좋다.  가끔 아침, 저녁 하루에 2번을 나가기도 한다.  아침 산책은 식구들 아침밥을 챙겨 먹이고 치운 후에 출발하기 때문에 8시 30분쯤에 시작된다.  당연히 이 시간 여름 산책늦다. 하지만 더 일찍 일어나 산책을 다녀와서 아침을 준비할 만큼 나는 아침형 인간이 절대 아니므로 나로서는 최선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것도 그나마 7월에나 가능했던 이야기다.

  8월 8시 30분 아침 태양은 그야말로 지구 북반구를 하루 종일 달구기 위한 예열을 마친 상태라 너무나 혈기왕성하다.  오전 9시가 넘어가자 햇살은 나를 이겨먹으려고 내 등과 머리 위를 세찬 햇살로 내리누른다. 벚나무가 만들어 준 고마운 나무 터널 사이에서 햇살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해 지만  어느 순간 햇살의 전리품인 진득한 땀이 내 등짝에 흥건히 달라붙는다.  몇 달 전만 해도 태양은 내가 정말 사랑한 녀석이었다.  특히 지난 겨울 추위 속을 산책하느라 싸늘해진 나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준 바로 그 마음 좋던 녀석이 이제 이렇게 새초롬하니 나를 내쫓기 바쁜 것이다.  결국 나는 작전상 후퇴를 외치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8월의 아침 산책은 이틀 만에 끝나버렸고,  이후 저녁 산책만 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 유난스럽던 태양 녀석이 요 며칠 많이 너그러워졌다.  한 여름 분기탱천하여 으르렁거리던 혈기의 그 청년 어느덧 고단한 세월을 부드럽게 바라보는 중년 된 느낌이다.  적당한 열기와 더위는 우리 숲에 사는 많은 고양이들을 불러내었다.  이때까지는 스름이 깔릴 때쯤 경계 눈빛으로 얼른 스쳐가던 존재감 없던 녀석들이 여름 끝의 적당한 더위가 좋은지 나무 아래나 테트라포드 위에 한, 두 마리씩 자리를 잡고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졸고 있는 것이다.  철새가 사라진 여름은 고양이들의 낙원인 듯하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니, 가랑비가 수시로 내린다.  그동안의 무더위에 지친 자연을 식히듯 자주 비가 내린다.  이 비는 봄비처럼 세차지도, 가을비처럼 휘몰아치지도 않고 소록소록 땅에 스며들 듯 조심조심 내린다.  이런 여름 가랑비 속의 오후 산책!  분홍 우산 속에서 비와 어울리는 적당한 음악은 비의 풍경과 함께 더욱 마음을 촉촉히 적실 수밖에.  이럴 때는 운동화보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어주는 것도 좋다.  

    그래도 여름 산책의 백미는 저녁이다. 여름밤은 그야말로 인간에게 너그럽다. 여름밤은 여름 낮보다 열 배쯤 아름답다. 겨울낮이 겨울밤보다 백 배쯤 아름다운 것처럼. 산책도 여름은 밤이고, 겨울은 낮이다.  음침한 기운으로 나를 누르던 겨울의 달빛은 여름이 되자 고고하면서도 해맑은 얼굴 변신하고, 스산한 마른 소리를 내던 겨울의 나뭇잎과 바람 여름이 되자 낭랑리듬으 나에게 손짓을 한다.  겨울밤은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의 수상한 그림자와 바람 소리를 내 정수리 위에 올려놓고 나를 돌아가라 지만 여름 나뭇잎 그림자도 즐거운 무늬가 되어 춤추며 환영 인사를 한다.  더불어 한 낮 무더위의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하얀 뭉게구름은 붉은 노을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그러다 보니 여름밤에는 사람이 많다. 여름 강변을 걷는 사람들의 경쾌한 행렬은 여름 강변의 숲을 청량하게 만든다.   낮의 더위가 강력수록 저녁엔 더 강력한 해풍이 불어 장난치듯 내 모자를 벗기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다. 다만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라 산바람처럼 상쾌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도심의 한증막 같던 더위에 지친 나에게 해풍의 시원함 가득한 여름밤 산책은 위안이 된다. 그래서 여름 산책은 역시 밤이 최고다.  

  하지만 겨울낮 산책의 묘미도 여름밤 산책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스산한 바람 속 겨울낮 산책은 나를 외롭게 한다.  한낮이라도 사람이 많지 않다.  그 외로운 산책로를 두꺼운 외투 한 장 걸쳐 입고 걷다 보면, 나를 비춰주는 햇살 한 줄기를 만나게 된다.  세상을 얼려버릴 듯한 추위 속에 한낮의 햇살은 오직 나를 위한 것이고 그래서 고귀하고 소중하다. 심지어 경건해지기까지 다. 그 햇살 아래 추위를 녹이는 나를 비롯한 많은 생명들, 그 앙상한 자연의 숲은 봄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좋다.   

  국 나는 지킬과 하이드 같은 자연의 양면을 다 볼 수 있는 겨울 산책, 그리고 여름 산책 모두 사랑한다.  이렇 다른 계절 속에 대비되어 같은 장소를 365일을 새롭게 걷는 내게 여름밤, 겨울 낮은 모두 아름답다.  그래서 산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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