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이 좋다.
부드럽게 꽃잎을 간지럽히듯 소곤소곤 내리는 봄비의 속삭임도 좋지만, 여름을 버틴 두꺼운 나뭇잎을 사그락 사그락 소리 내며 흔드는 가을 빗소리가 더 좋다.
따뜻한 훈기로 날갯짓 하듯 간지러운 봄바람도 좋지만, 문풍지 두들기듯 윙윙 소리나는 가을바람이 더 좋다.
추운 겨울 이겨낸 봄 새싹의 생동감도 경이롭지만 여름 더위 견뎌낸 가을 풀벌레의 정다운 노래가 더 좋다.
봄 햇살이 키운 노란 꽃의 아기자기함도 좋지만, 가을바람에 몸을 낮춘 보라색 꽃무리의 고요함이 더 좋다.
미사여구 화려한 시를 부르는 봄나무의 찬란함보다 아무개의 이야기가 숨을 쉬는 가을 나무의 그루터기가 더 반갑다.
가을이 되면 가을의 그리움에 하늘을 쳐다보고, 봄이 되면 봄의 고마움에 땅을 보게 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가을이 좋고, 봄이 되면 봄이 좋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