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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18. 2018

가을의 이름은 바람이다

가을의 속도전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평소보다 두 시간 빠른 오후 4시에 산책을 나왔다. 길을 걷다 보니 갈수록 바람이 져서 모자가 날아가려 한다. 모자를 고쳐 쓰려고 고개를 들다가 문득 하늘을 보니 솜이불같이 커다란 뭉게구름이 푸른 하늘 가득 느리게  비행하고 있다.


 어제까지 여름은 축축하고 비대한 몸집으로 내 몸을 누르고는 자신의 끈적한 입김을 내뿜더니, 오늘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게 물기를 빼앗겨 가벼워진 몸집은 하늘 높이 솟아 올라 구름이 되어 버렸다. 


 이제 두어 달 지나면 이 바람은 산발한 듯 풀어헤친, 무성했던 나뭇잎들도 아래로 떨궈내고 나뭇가지 사이사이 바람으로 채울 것이다. 그러면 가벼워진 나무는 쭉 어깨를 펴고는 뜨거웠던 지난 여름 이야기를 지나가는 벌레들에게  들려주겠지. 그렇게 가을은 바람이 되어 조금씩, 조금씩 여름을 걷어내고 그  자리를 바람의 속도로 채우며 어디론가 또  달려가겠지.  


 산책길에 노년의 부부를 보았다. 잘 걷지 못하는 60대 아내의 팔을 잡고 천천히 보폭을 맞추어 걷는 70대의 남편.  그들의 걸음은 바람이 밀어주는 탓인지 가벼워 보였다. 한 때는 무거운 여름 공기 같은 인생의 무게를 뜨겁게 안고 세상을 살아냈겠지. 이제는 그 무게를 가볍게 떨궈내고 바람처럼 유유자적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도는 그들보다 빠르지만, 그들보다 가볍지 않다. 그들은 그들만의 시간 안에서 그들의 속도로 흘러가듯 가볍게 간다.

 바람은 세상 만물의 열기와 물기를 닦아주며 말한다.
"가벼워져라. 너의 무게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게 사방을 휘감고 어디론가 바삐 달려간다.


 가을의 속도는 시작되었다. 가벼운 바람처럼. 빠르지만 여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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