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16. 2020

치매의 절망 끝에서

  엄마에게는 세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딸을 힘들게 해서 미안 슬픈 엄마, 또 하나는 딸에게 떨어지기 싫은 떼쟁이 엄마, 또 하나는 자신의 흐릿한 의식이 두렵고 결국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 같은 무서움에 분노를 폭발하는 엄마이다. 요즘은 세 번째 엄마가 자주 찾아온다.  


 "니가 누고?"

매서운 눈매와 떨리고 낮은 목소리로 자기가 누구인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묻는 순간 나는 깨는다. 세 번째 엄마가 왔다는 것을.  그때부터 엄마는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며 끝도 없는 화를 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방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물건을 다 꺼내어 집어던진다.  리고 수건으로 자신의 목을 감으며 죽고 싶다를 외친다. 그렇게 5~6시간의 폭풍이 지나면 지쳐 잠이 들거나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곧 부드러운 눈빛의 순둥이 엄마가 찾아온다. 그리고 말한다.


  "때문에 니가 고생이 많제."

그 한마디에 나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엄마가 더 마음 아파할까 봐 울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젓다.  그러면 엄마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앉아있기만 한다.  그러다 몇 시간 후 엄마는 다시 멍한 눈이 되어 나를 부른다.


   "여기가 어디고?" "오늘 나랑 같이 있자"

또 다른 엄마는 내 손을 끌고 일단 자기 방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리고 내 옆을 떠나지 않고 무한 반복 질문을 한다. 가족 각각의 이름을 묻고, 일본 말, 일본 노래, 일본 이름을 말하라고 다그친다.  온갖 노래를 다 틀어놓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한다. 하필 그때가 출근 시간이나는 아들에게 눈짓을 보내고, 아들 할머니를 잡 사이 도망치듯 출근을 한다.  멀리서 버둥거리며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와 부서질 듯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날 나는 미묘한 냄새로 가득한 엄마 방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얼룩덜룩 무언가가 묻은 휴지 뭉탱이와 심하게 오염된 속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침대 구석에 익숙한 공책이 보였다.  항상 엄마 침대 주변에 놓여 있었지만 나는 여태 그 물건에 관심이 없었다.  렇게 처음으로 그 공책을 열었다.  작년 6월부터 12월 26일까지 반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은 내용으로 반복된 글쓰여 있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그날의 날짜. 그리고 1부터 100까지 숫자, 당신의 자식인 나와 동생의 이름, 본인 사위와 손자인 나의 남편과 아들의 이름.  

또, 십여 년 이상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던 당신의 부모님과 형제의 이름들이 삐뚤빼뚤 쓰여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부모님. 그러니까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쓴 짧은 편지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하늘에 있는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하늘에서는 엄마만 사랑해 주십시오. 딸의 소원입니다. "

매일 반복되어 쓰인 글 속에는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잡고 싶이름들 그리운 어린 시절이 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한참을 울다가 청소하다가 울다가 청소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첩을 둬서 엄마를 많이 고생시켰다. "

"어릴 때 나는 엄마를 따라 아빠 찾으러 첩의 집에 갔고 그때 엄마가 많이 맞았다."

"우리 엄마가 보고 싶다."

"나는 왜 가족이 없나?"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던졌던 단문들 그저 치매로 인한 투정으로 넘겼다.  하지만 그 단문들은 엄마의 눈물이었고, 이었다.  


  매일이 한계와의 싸움이다.  어제의 한계를 결국 오늘이 깨고, 오늘의 한계를 내일이 깰까 두렵다. 며칠 전 울면서 찾아간 요양원 앞에서 엄마는 들어가기를 강하게 거부했고, 나는 가면서 흘린 눈물이 무색하게 암담한 한숨쉬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퇴근하고 돌아온 거실은 온갖 잡동사니 뒤죽박죽 되어 있었다. 요양보호사는 오늘 자신이 겪은 일을 한숨과 함께 털어놓으며 언제까지 모실 거냐고 투덜거리듯 말한다.  내일은 병원에서 더 강하게 약을 지을 거라는 내 말에 그녀 별말 없이 돌아갔다.  오늘 저녁 일찍 잠든 엄마 덕에 오랜만의 여유를 누리며 이 글을 쓰지만, 내일 새벽, 엄마는  어떤 얼굴로 내  방문을 벌컥 열 두렵다.

   

이전 14화 엄마, 당신은 누구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