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3차원과 4차원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장면이 있다. 그처럼 엄마는 순간순간 인식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것을 느끼는 듯 보인다. 그 경계선이 얼마나 깊고 느릴지, 또는 얼마나 가파르고 얕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혼란의 블랙홀에 빠졌다 나오는 엄마의 감정적 슬픔은 그저 나를 먹먹하게 만든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 환자의 슬픔(사는 것도 죽는 것도 싫다)
" 나는 사는 것도 싫고 죽는 것도 싫다. 어떡하면 좋냐? "
오늘 엄마는 또 나에게 숙제를 던진다.
어쩌면 이 말이 인식의 혼란선 상에 있는 현재의 엄마를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흐린 정신을 부여잡고 사는 것에 몸서리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한 집념도 놓을 수 없는 그 경계선이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또 내가 어떤 부분에서 엄마의 마음을 놓쳤나 싶어 고민한다. 내 삶에 지쳐 엄마를 또 존재감없이 느끼도록 방치했나 싶어 마음이 좋지 않다. 차라리 엄마를 좋은 요양기관에 입급시켜드리고 자주 찾아뵙는 게 더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드리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같은 공간에 있어도 여전히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인터스텔라의 책꽂이 너머에 서있는 엄마가 느낄 감정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 인생은 우습고도 슬픈 것이다.(나 죽으면 화장 안 할래.)
"니, 내가 죽으면 화장할 거가 매장할 거가?"
"나? 화장할 건데?"
"니 정말 그럴래?"
"내가 한 번만 더 그 이야기하면 화장한다했지? 그러니까 화장할 거야. "
" 흐흐흐, 알았어. 이제 그 말 안 할게. 그러니까 절대 화장은 하지 마라."
몇 년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화장 이야기를 또 요 며칠 계속하길래 나는 한 번만 더 그 이야기하면 화장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뒤 엄마는 다시 그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나의 협박에 오랜만에 활짝 웃는다. 한 번만 더 그 이야기하면 진짜 화장할 거라는 이 슬프고도 살벌한 이야기에.
# 가족의 자책감(우리가 좀 더 할머니와 소통했어야 했어.)
"우리가 좀 더 할머니와 소통했어야 했어. 그랬으면 할머니가 좀 괜찮았을 거야."
아들의 말에 나는 폭발했다.
"할머니는 너에게만 다정했지, 나에게는 예전부터 얼마나 힘든 말을 많이 했는지 아니? 할머니와 대화할 때 나는 벽과 말하는 느낌이었어. 아니 또 누군가에게 향할 그 화를 내가 또 받아낼 생각을 하면 대화를 시작도 하기 전에 긴장되는 내 마음이 어땠는지 네가 알아?"
아들 친구가 집에 있는 중에 엄마와 나는 1시간 가까이 유치하면서도 격렬한 설전을 벌였다. 말도 안 되는 설전에 아들은 나와 할머니를 오가며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친구와 나가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아들은 친구와 집에서 쉬고 싶다고 나가지 않았다. 항상 그렇지만 그날도 정말 사소한 문제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 거실 말고 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면 안 될까? 지금 00의 친구도 와 있는데. "
아무데서나 옷을 훌러덩 벗는 엄마에게 내가 또 조심성 없이 이 말을 해버렸다.
그때부터 엄마는 소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화를 내기 시작했고 말다툼은 격해지고야 말았다. 다음날 아침식사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고, 아들은 '우리가 예전에 좀 더 할머니와 소통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자책감과 서러움에 화가 나서 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TV 드라마 속 치매는 현실이 아니다
TV 드라마 속 치매에 걸린 어른들은 너무나 곱고 따뜻하다. 하지만 현실의 치매는 냉혹하다. 드라마 속 치매는 그저 잠깐 길을 잃고 가족들은 찾아다니고 결국 감동의 상봉으로 따뜻하게 마무리되지만, 현실에서는 하루 종일 찾아다니느라 후들거리는 다리 한 번 쉬기 전에 찾아준 주변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고 '잘 챙겨봐야 한다', '이름표를 잘 달아주어야 한다'는 그들의 충고를 한참 동안 주워 삼켜야 한다. TV 드라마 속 치매 어른은 그저 엉뚱한 말과 기억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이 전부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집안 곳곳의 오염을 수시로 닦아내야 하고 끝없는 트집과 호통을 받아넘겨야 한다. 그리고 5분 단위로 이어지는 반복된 질문과 2시간 간격으로 깨야 하는 밤샘을 겪어야 한다. 새벽 2,3시에도 수시로 흔들어 깨우며 "나 지금 뭐 해야 해?" " 너는 내일 뭐 할 거야?" " 밥은 언제 먹을 거지?" " 간식 없어?" "왜 나는 아들을 두고 딸과 살아야 해?" " 왜 아들은 나 보러 오지 않지?" " 왜 나는 엄마가 없지?" "이 옷을 입고 가면 사람들이 놀려. 어떡하지?"와 같은 질문들에 일일이 대답과 대응을 해야 한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해지면서 자책의 수렁에 빠지는 치매는 결코 TV 드라마처럼 아름답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저 전쟁을 치르듯 하루의 시간과 무표정하게 싸워나갈 뿐이다. 그리고 지치지 않으려 전투를 준비하듯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재점검할 뿐이다. 어쩌면 지는 싸움에 가깝지만 그래도 감사한 순간들이 단 열매처럼 가끔 있기에 그저 견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