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안정제를 타 왔다. 2주 전 타 온 10알이 금세 바닥나면서 또 신경안정제 20알을 받아온 것이다. 이 약을 쥐고 있는 오늘 밤은 어제보다 두렵지 않다. 총알이 떨어진 병사가 캄캄한 야간에 육박전을 치를 두려움에 떨다가 새 총알을 보급받은 기분이 이럴까? 오늘 새벽, 엄마가 또 일어나 '이 집이 내 집이 아니라'라고 뛰쳐나갈 징조가 보이면 이 약을 과감히 엄마에게 먹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재빠르게. 하지만 엄마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엄마 또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재빠르게 뱉어낸다. 먹는 척 손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 슬쩍 아래로 떨어뜨린다. 나는 최근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요양보호사들은 엄마가 약을 먹은 게 확실하냐고 계속 내게 물었다. 나는 분명히 내 눈 앞에서 드셨다고 억울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깜빡 속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내 눈 앞에서 엄마가 약을 먹더라도 한 번 더 확인한다. 주위에 약이 떨어져 있지 않은지.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평화로운 새벽을 오늘도 맞이하길 빌며 잠이 든다.
오늘 새벽은 엄마의 깊은 잠 덕에 고요히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은밀하게 주말 산행을 준비한다. 우리 부부에게 허락된 일주일에 단 두 번의 휴식. 토,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요양보호사가 나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겨 주말에도 엄마를 잠시 돌봐주신다. 처음에는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남편과 예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쇼핑몰에 갔었다. 그러다 몇 주 전부터 산행을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짧지만 소중한 시간, 산행을 기다리는 낙으로 나의 평일을 견뎌낸다. 등산복을 입은 토요일 오전, 출근하는 척 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에게 신경안정제 한 알을 살포시 쥐어준다.
" 많이 힘들게 하시면, 먹이세요."
내가 버티기 위해 선택한 두 가지 방법인 신경안정제와 산행은 그렇게 오늘도 엄마와 나의 불안한 동행의 희망이 되었다. 어떻게든 엄마를 내 곁에 있게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엄마를 안정시켜야 하고, 나 스스로 힘을 얻을 작은 쉼이 필요했다. 엄마는 여전히 약을 뱉어내며 낯선 세상과의 싸움에 나서려 할 것이고, 나는 신경안정제와 산행으로 엄마와의 힘든 싸움을 견뎌보려 할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내일도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