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아침, 밥 먹기 싫다는 엄마를 어르고 달래서 식탁에 앉혔다. 뽀얀 해물 탕국과 생선전이 있지만 엄마는 숟가락을 몇 번 들썩거리다 몇 숟갈 채 뜨지 않고 놓아버렸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뜬금없이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살기 시작했던 15년 전 일이다. 엄마는 내가 한 반찬들이 영 입에 맞지 않아 본인이 모든 음식을 따로 해 드셨다. 남편도 내가 한 반찬보다 엄마가 한 반찬이 맛있다고 했다. 결국 자연스럽게 나는 부엌에서 멀어졌고, 부엌은 엄마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가 한 반찬을 먹으면서 그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기력이 없어지는 날이 오면 엄마는 내가 만든 반찬을 먹을까? 그때도 내가 만든 건 맛이 없다고 먹지 않을까?'
그렇게 얼치기 주부 역할만 하며 살 줄 알았던 내가 이제 엄마의 삼시 세 끼를 책임지며 하루하루를 동동거리며 살고 있다. 지금은 엄마가 식사를 거의 안 하려고 해서 걱정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내가 만든 반찬들로 식사를 하며 "역시 옛날 사람보다 요즘 사람들이 아는 것도 많아서 음식도 잘하네."라며 세월의 간극을 느끼게 하는 음식 칭찬으로 나를 어색하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일, 자신의 것에 내 도움은 하나도 필요 없을 것 같던 엄마는 이제 모든 것을 내게 의지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자꾸만 탓하고 스스로를 할퀸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효자든 불효자든 조금 더 잘해드릴걸 하는 회한이 가슴 한편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불효자라면 더욱 두고두고 가슴 아픈 아쉬움을 곱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는 엄마가 차라리 고맙다. 치매라는 병으로 인해 강제로나마 엄마에게 효도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엄마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려 하면 나는 부리나케 엄마에게 가서 치대고 어리광을 부린다. 그리고 평생 먼저 나서서 안 하던 팔다리 주무르기를 수시로 하며 살갑게 군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요즘 약의 강도를 높여서인지 어쨌든 나를 보는 엄마의 눈이 많이 너그러워졌다. 지금도 여전히 사흘에 한 번은 딸을 못 알아봐서 집에서 쫓겨나고, 밤낮을 모르는 엄마 덕에 잠을 설치지만 그래도 대형 사고는 잦아들었다.
엄마는 철없고 사고만 치던 아들과 경제력 없고 병구환하기 바빴던 남편보다 말없이 엄마를 따랐던 맏딸인 나를 믿고 의지했다. 나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 내가 엄마에게는 남편이고 친구였을 것이다. 그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없이 믿고 의지하던 든든한 딸과 소중한 아들을 몇 달 간격으로 결혼시켰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던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된 엄마는 그 생소한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미혼이었다가 곧 신혼이었으므로 그 관계 설정의 중요성에 대해서 별 생각과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그리 잘하고 다정한 엄마이기에 며느리에게도 똑같을 줄 알았다. ) 그렇게 며느리와의 깊은 갈등을 겪은 엄마의 가슴에는 결국 강한 트라우마가 남았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과 딸과 사위에게 얹혀산다는 우울감으로 엄마의 성격은 급속도로 외골수로 변해 가며 나에게 더욱 집착했다. 그런 엄마를 나 또한 부담스러워했다. 그렇게 엄마는 모든 가족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점차 엄마에게 무덤덤하고 무심하고 심할 때는 냉랭한 딸이 되어갔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골을 가지게 된 우리 모녀에게 치매는 갑자기 들이닥쳤고,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강제 효도를 다음과 같이 실천하게 된 것이다.
먼저 음식이다. 예전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한 음식에만 신경 썼을 뿐, 엄마 음식에는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밥을 거의 먹지 않는 엄마를 위해 나는 요리연구가가 되어야 했다.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고구마를 삶아서 물엿을 발라 구워보지만 결국 먹이는 데는 실패했다. 또 부드럽고 달달한 황도를 사 와서 먹기 좋게 잘라서 먹여보려 했지만 이것도 실패. 예전에 엄마가 좋아했던 옥수수, 바나나 등을 입맛 돌게 요리하거나 세팅해서 내어 놓아도 그때처럼 맛나게 먹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요리가 아닌 시도 수준이지만 이마저 엄마의 음식에 대해 이렇게 고민해 본적이 이때까지 나는 없었다.
두 번째는 엄마의 잠자리이다. 엄마는 혼자 자기 싫다는 등의 이유로 본인의 좁은 침대에서 내가 함께 잘 것을 원했다. 그렇게 자는 것이 자유롭지 못해서 나는 갑갑하고 싫었다. 그리고 이불을 목부터 발끝까지 계속 덮어주는 엄마 때문에 덥고 숨이 막혔다. 그래서 얼른 엄마 방을 빠져나갈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이제 엄마랑 같이 자는걸 편하게 생각하고 익숙해졌다. 더운 여름이 끝난 것도 이유이겠다. 어쨌든 엄마가 같이 자자고 하면 그저 함께 누워 이야기를 들어주다 까무룩 잠든다.
세 번째, 엄마가 화를 내거나 힘들어하면 그전에는 그 상황이 짜증나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 준다. 그럼, 엄마는 조금씩 마음이 풀어졌다. 항상 통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치매라는 병과 싸우기 위해 마지못해 실행하던 나의 반강제 효심 속에 지금은 약간의 진심이 흐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사고나 병마로 10여 년의 세월 동안 엄마와 나 사이에 생긴 응어리를 풀 기회를 놓쳐버리는 상황이 아닌, 치매라는 난공불락의 적과 오랫동안 같이 싸우는 동지로서 엄마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훗날 엄마가 그리울 때가 온다면 응어리보다는 그리움을 심어주어서 감사했다며 눈물을 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줄타기 같은 현재의 위기 속에서 얼마나 갈지 모를 아슬아슬한 평화를 조금씩 연장하며 오늘도 엄마의 간식에 치매 약을 살그머니 탄다. 그리고 내 마음 한 스푼도 잊지 않고 함께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