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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14. 2018

엄마, 당신은 누구십니까?

  가끔 서러운 꿈을 꾼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꿈.

세상에 나만 남아 사방이 뻥 뚫려버린 회색 공간을 헤매며 끙끙거리다 눈을 뜬다.


  "배 고프다. 밥 먹자."

 어느새 내 옆에는 엄마가 와서 나를 깨우고 있다.

  5분 전만 해도 그립기만 했던 엄마가 나의 잠을 깨우는 훼방꾼이 되자, 나는 다시 못된 딸이 되어 말한다.

 "10분만 더 자고."


  엄마는 서서히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변한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분명 헌신적이고 따뜻하였던 엄마의 모습은 내가 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걸까? 엄마는 그렇게 처음부터 까탈스럽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사람이었나?

아니면,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다가 자식이 결혼하고 곁을 떠나버리자 삶에 대한 허무함에 그렇게 변한 것일까?

  

  10여 년 전 엄마가 결혼한 나와 살게 되면서 보여준 외고집, 그리고 이유없는 비난과 오해에 나는 학을 뗐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친정 엄마와 같이 살아서 좋겠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넌 그렇게 좋은 친정 엄마와 왜 같이 살지 않는 거지?'

 그렇게 나는 어린 자식 앞에서 엄마와 매일 불같이 싸우며 전쟁 같은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3년 전 엄마는 인지장애 진단을 받았고 작년 치매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의 전쟁을 멈췄다.

김치 국물 자국이 온 집안 곳곳에 묻어 있어도, 화장실 세면대가 수시로 막혀도, 내 물건들이 자꾸만 사라져도 따지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닦아내고, 고치고,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요즘처럼 매일 집에 같이 있으니, 아침마다 떨어지기 싫은 아이처럼 언제 오냐고 붙들고 묻지도 않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혼자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되니 나의 직업이 감사하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엄마에게 화내지 않지만, 내 속에는 두 개의 인격이 같이 살게 되었다.

 한 녀석은 아침부터 밤까지 내 곁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밥 달라, 놀아 달라'고 하는 엄마에 대한 지침,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포기하고 항상 엄마를 끼워서 셋이 함께 다녀야 하는 불편함, 내 개인 생활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또 한 녀석은 나를 위해 젊은 시절을 희생한 엄마에 대한 감사함과 그런 엄마에게 잘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딸 노릇만 마지못해 하는 내 모습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래서 나는 잊을만하면 꿈을 꾼다. 엄마가 사라지는 꿈.

그리고 그 꿈 속에서 참회하고 슬퍼한다.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몸부림친다. 그리고 눈을 뜨면 또 다른 인격의 내가 감정 없는 말투로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밥 먹고 약 먹자."

 그리고 나는 또 꿈을 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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