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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14. 2020

외국 항공사 승무원의 이야기: 입사 이후, 최대 위기

'띵동-'


몇 시간 간격으로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이제는 회사 애플리케이션 알람이 울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또 잘렸겠구나..'


역시나다. 

며칠 전부터 줄줄이 비행이 취소되기 시작했다. 중동, 유럽 지역은 이제 본격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요즘은 산업 전반적으로 코로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가 없지만 항공 업계는 그중에서도 그 영향이 엄청나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경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몇 주전만 해도 중국, 한국 등의 감염자 수가 많은 국가로부터의 입국자를 제한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가지도 말고 들어오지도 말라는 형태의 국경 통제로 인해 국제선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도시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두바이 공항 터미널2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우리 항공사는 인접 국가인 쿠웨이트로의 비행이 유독 많았다. 심지어 쿠웨이트 공항에 우리 항공사 만을 위한 미니 터미널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런 쿠웨이트가 공항을 폐쇄했다. 공항 폐쇄라니. 국경을 넘나드는 게 일상이었던 나에게 국경 봉쇄, 공항 폐쇄 같은 단어는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비행 취소 알람을 받으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든다. 


첫 번째, 다행이다. 차라리 이럴 때는 쉬는 게 낫다는 생각. 

비행기에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180명 언저리.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비행기를 타고 내렸고 음식을 먹고 기침을 하고 화장실을 사용했을까 생각하면 머리가 띵하다. 


하지만 그 생각만 하기엔 다음 달 월급이 아쉽다. 

승무원들은 보통 기본급에 비행수당을 받는다. 비행이 없으면 다음 달 월급이 당연히 줄어든다. 


'다음 달 월급 어떡하지? 다음 달 월세 나가는 달인데..'


현실적인 문제다. 




최근 미국의 보잉(boeing)사에 관한 뉴스를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서 많이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항공업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보잉사의 '맥스(max)' 기종 때문이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우리가 제주도 갈 때 타는 3-3 구조의 작은 여객기(B737)의 최신판인데, 그 맥스가 두 번이나 추락사고를 일으켰다. 원인은 기체결함으로 판명됐고 전 세계적으로 맥스의 운항이 금지 됐다. 작년 3월 즈음부터였을 거다. 사고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처음 맥스가 세상에 나왔을 때, 항공사들은 효율적이기로 알려진 B737기의 최신 모델을 너도 나도 들이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기종을 운항하는 여타 항공사와는 다르게 우리 회사는 오직 B737에만 올인하는 대형 저비용 항공사였다. 그때 당시 우리 회사는 모든 구형 항공기를 맥스로 하나하나 교체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맥스를 위한 새로운 기내 인테리어를 시작했으며 저비용 항공사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비즈니스 클래스를 도입하는 등 '맥스' 마케팅에 꽤나 공을 들였다. 


그런 우리 회사에게 '맥스 전 세계 운항 금지'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열몇 대의 비행기가 운항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의미한다. 항공사는 무조건 비행기를 띄워야 이익을 보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열몇 대의 비행기의 발이 땅에 묶여있는 바람에 수백 명의 승무원들이 필요 없게 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 회사는 승무원들에게 무급 휴가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에게 '맥스'로 인한 스케줄 변화는 서서히 다가왔다. 비행이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비행 스왑 시스템(승무원들끼리 서로 스케줄을 교환할 수 있음)을 통해 상쇄가 가능했고, 비행이 줄어든 김에 모처럼 여유로운 생활을 즐겨보자 하는 분위기도 꽤 있었다. 회사도 대안을 생각할만한 시간이 있었고 실제로 다양한 대안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회사는 안정을 찾았고 제조사로부터 불이익에 대한 보험금도 받았으며 지난달에는 이례적으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돌리는 등 사태는 전화위복 되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정말 '코로나 위기'는 걷잡을 수 없는 듯하다.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 듯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취소되는 비행 스케줄에 승무원들도 당황하지만 그걸 컨트롤하고 있는 오피스 직원들은 오죽할까. 

나도 처음 비행이 취소 됐을 때 오피스에 전화를 걸었다.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전화를 건 승무원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안 봐도 비디오지. 

심지어 오늘은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공식 이메일이 왔다.

내용인즉슨, 너희가 당황하는 거 알고 있으나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전화를 삼가 달라는 것. 

모두의 상황이 정말 애처롭고 안타깝다. 




회사에선 무급휴가를 장려하고 있다. 

난 확진자가 많은 위험 국가라고 해도 한국에 가고 싶다. 

정치인들과 언론의 선동에 뉴스와 댓글을 보는 게 토가 나올 지경이지만 한국은 정말 대처를 잘하고 있다. 

내 나라에서 적어도 내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 위기를 겪어 나가고 싶지만 승무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난 그럴 수도 없다. 



언제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까? 

작년에는 따뜻한 봄에, 초여름에 유럽 비행을 갔었는데. 

올 해는 꼭 한국에서 벚꽃을 보고 싶었는데. 

올 해는 엄마의 환갑 기념으로 꼭 여행을 시켜드리려고 했는데 그럴 수 있을까?




당분간 나는 아마 꽤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일상이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 


모두에게 위로와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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