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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24. 2020

Stay positive, stay home.

이제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뉴스가 낯설지 않다.

아침잠이 많아 남들보다 늦게 일어나는 나.. 언제나 그렇듯 눈을 뜨자마자 카톡을 확인한다.

오늘은 또 어떤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발표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UAE에서 오늘은 앞으로 2주 동안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과 약국, 주유소를 제외한 모든 상업 시설을 폐쇄하겠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어휴.. 이젠 진짜 어떡하지 싶다가도 새로운 뉴스에  절망감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이런 느낌이 익숙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UAE내 모든 비행을 취소하겠다는 발표가 어제였던가 오늘이었던가?

매일 충격적인 소식에 치이다 보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단톡방이 바쁘다.

두바이에 있는 지인들끼리 단톡방이 몇 개 있는데 비슷한 소식이 여기도 올라오고 저기도 올라온다.


'지금 한인마트에 한국인들이랑 필리핀들이랑 엄청 몰려서 사재기하고 있대.'

'제 남편의 친구가 XX병원에서 일하는데 이미 한참 전부터 에미라티(Emirati; UAE 국민) 사이에서는.. 블라블라'

'여기는 개도국 노동자들이 많아서 확진 판정을 받으면 추방되기 때문에 아파도 절대 병원 안 갈게 뻔하죠..'

등등.


대부분 정확한 뉴스가 아닌 '내 친구의 동료의 아내의 사촌한테 들은 얘기인데요..'식의 가십들이거나 비관적인 추측들이다.

이 상황을 낙관하고 지켜보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깨톡-깨톡- 울리며 퍼지는 부정적인 기운에는 동요되고 싶지 않다.


현실을 받아들여야겠다.

어차피 한국에 갈 방법은 없고, 일도 없다.

비치에서 수영을 할 수도 없고 펍이나 레스토랑에서 예전처럼 친구들과 웃고 떠들 수도 없다.

이제 더 이상 3인 이상 한 곳에 모여있을 수 없고 함께 차를 탈 수도 없다.

그게 현재 상황이고 내가 그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항상 손소독제를 들고 다니며 공공장소에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예방하는 방법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집에 음식이나 물건을 쟁여놓는 스타일이 아니다.

평소에도 장을 볼 때 항상 필요한 만큼만 사는 편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공감하겠지만 외국에 살다 보면 라면이나 냉동식품 같은 한국 음식을 쟁여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단 라면 한 봉 지도 집에 없다.

그때 그때 해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다이어트 때문에 인스턴트 음식을 피하는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을 자제하라는 조치가 떨어지자 라면이나 김치라도 좀 사다 놓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바이에는 꽤 큰 한인마트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는 좀 멀다.

요즘은 남는 게 시간이니 먼 것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기 두 명과 함께 길을 나섰다.


'정말 사재기가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비고 김치 500그람 짜리라도 사 와야지.

그게 안되면 멸치액젓이라도 사서 직접 담가먹어야겠다 등등 나름 텅텅 비어있을 선반을 대비한 마음가짐을 했다.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 손세정제가 보인다.

그리고 발견한 놀라운 것.

그 옆엔 일회용 장갑이 한짝씩 깔끔하게 비치되어있었다.


oh my god.

한국인들의 대처 능력과 마음씨.

정말 감동적이다.

손세정제야 어느 숍이든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모든 입장 고객들을 위한 장갑을 준비해놓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배려에 걱정되고 불안했던 마음도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재기는 없었다.

사재기의 기운은 정말 하나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사재기를 하지 않으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편안하게 마음껏 먹고 싶은 것들을 담았다.

두려움에 이것저것 주워 담는 느낌이 아니라,

"야. 우리 떡 사서 떡볶이 해 먹자!" 혹은

"불닭볶음면 짜장맛 언제 나왔어? 진짜 맛있겠다. 나 하나만 살래!"

"안돼 언니 살쪄!"

등의 익숙한 대화였다.


제발 두려움을 조장하는 가십들은 그만 공유했으면 좋겠다.

상황이 심각한 건 이미 충분히 모두가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방을 하며 서로를 다독여도 모자랄 판이다.




새삼 느낀다.

한국이 얼마나 지혜롭게 위기를 견뎌내고 있는 지를.


국경을 봉쇄하지도 않고 컬퓨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는데 한 달새 확산세가 줄어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겨우 일주일을 못 참고 마스크가 답답하다고 투덜거리는 나인데, 한국에 있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은 어떻게 두 달이나 되는 시간을 참아낸 걸까.


요즘 같은 때에 혹시나 감기라도 걸릴까 따뜻한 날씨에도 두꺼운 가디건으로 몸을 꽁꽁 여민건 잊어버리고 왠지 더운 기운이 느껴지면 혹시 열이라도 나는 걸까 불안해하는 내 자신을 보며...

다들 나에게 말을 안 했어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한국에 있는 내 가족들 친구들.




UAE는 앞으로 2주간이 고비가 될 것 같다.

그동안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거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웠다.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나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으로 운동에 집착하기도 하고, 생~전 관련 없던 악기를 배우려고 하기도 했다(추가: 인강으로 외국어 공부, 자격증 공부 등 시도).


그런데.

정말 그런 것들도 다 좋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위로해주기에도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 시간들도 다 지나가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친구들과 동네 단골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할 날이 금방 오겠지?

내가 싫어하는 사무장이랑 같이 가는 비행이 나왔다고 3일 전부터 동기들에게 투덜거리며 억지로 억지로 출근했던.. 그 평범했던 날들이 다시 오긴 하겠지?


'그동안 네가 누리던 일들이 사실 정말 대단한 거였어'

라고 누군가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Stay positive, stay home.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할 일은 너무 많다.

이제부터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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