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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16. 2020

이 와중에도 꼭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사람들

'DXB-MCT'


무려 일주일 만에 비행이었다.

정확히 지난주 일요일에 같은 비행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다시 같은 곳을 간다.

목적지는 오만의 무스캇.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데 45분 정도 소요되는 짧비(짧은 비행을 줄여서 부름) 중에 짧비다.


오만 국경은 두바이에서 차량으로 이동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가장 가까운 도시는 두어 시간이면 도착하고 수도인 무스캇도 다섯 시간 정도 걸리니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라고 보면 쉽다.

쿠웨이트 못지않게 한창 비행이 많을 때는 하루에만 대여섯 대의 비행기가 뜰 정도로 우리 회사의 인기 섹터이다.




무스캇 비행이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비자 런(Visa run)'이 필요한 승객들 때문이다.

비자 런이란 외국에 체류하는 동안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혹은 다른 비자로 변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잠시 출국한 후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두바이에는 정말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다. UAE에 살고 있는 자국민은 10프로에 불과하니 말 다했다.

10프로의 자국민을 제외한 수많은 외국인들은 대부분 노동자이다. 그 노동자라 함은 건설, 청소, 서비스, 일반 회사 등 UAE에서 워킹 비자를 받고 일하는 모두를 의미한다.


'워킹 비자'라는 의미는 해당 국가의 나의 비자를 서포트해주는 '고용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비자를 진행하는 비용은 철저히 '고용주'가 부담한다.

지금 나 같은 경우는 우리 항공사가 내 비자를 신청해주고 매 3년마다 갱신해주며 개인 의료 보험 및 비자 진행 비용을 대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겠지만 외국인 직원의 비자를 스폰하는 비용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모든 게 돈으로 통하는 UAE는 오죽하랴.


그런 이유로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나, 개인적으로 직원을 고용하는 경우(아기를 돌봐주는 유모 등)는 정식으로 워킹 비자를 신청하기보다 '비자 런'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단 관광비자로 입국한 후 1-3개월에 한 번씩(국적에 따라 다름) 가까운 오만으로 출국 후, 다시 입국하는 방식으로 관광비자를 갱신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UAE에 체류하고 있다. 나름 두바이에서는 수입이 좋은 편에 속하는 한국인 사업자들 몇몇도 이 방법을 통해 이 나라에서의 체류를 연장한다. 이건 비단 UAE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며칠 전부터, 이 비행 역시 캔슬될 거라고 예상해왔다.

요즘은 그렇다.

비행이 취소되거나, 아니면 전체 좌석의 5분의 1도 안 되는 승객만 실은 채 가거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회사에 도착해서 브리핑에 들어갔는데, 두바이에서 무스캇으로 가는 첫 섹터와 다시 돌아오는 두 번째 섹터가 모두 만석인 것을 확인했다.


'이거 실화야?'

'도대체 이 시국에 누가 비행기를 탄다는 거야?'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같은 비행을 가는 동료 크루들이 말했다.

대부분 '비자 런'을 하는 승객들일 거라고.




맞았다.

대부분 그랬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필리피노 아니면 아프리칸이었다.

보통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청소 혹은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189명 만석의 작은 비행기가 꽉 찼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장갑을 낀다.

마스크가 없는 누군가는 스카프로 코와 입 주변을 돌돌 감았다.

탑승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상하리 만치 모두 스스로 안전벨트를 매고 안전 수칙을 따른다. 안전벨트 사인이 켜져 있을 때 일어나는 승객도 없고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모두가 불필요한 움직임과 대화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 때문에 중국, 일본, 한국이 차례로 큰 위기를 겪었고 이제는 중동, 유럽, 미국 까지.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때에도 비행기를 타야 하는 누군가는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비자 런을 하며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 비자를 갱신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어 벌금을 내고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입장에 놓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게다가 UAE조차 이틀 후부터 모든 Entry Visa 발급을 중단하겠다고 나섰으니 그들의 조바심이야 오죽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들을 아예 막아버리자 라든지.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 "해외여행"(흥분해서 큰 따옴표함)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냐라든지.

(+추가. 취소 수수료가 그렇게 아깝냐 등)


그럴 때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다.


'비행기 타는 일이 곧 해외여행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만..'




오늘은 처음으로 모든 크루가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나도 처음으로 비행 중에 마스크를 썼다.

깔끔하고 밝은 모습으로 승객들을 환영해야 하는 승무원들 얼굴에 마스크라니,

아마도 오늘을, 요즘의 비행들을 앞으로 오래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싶었다.


UAE도 서서히 공공장소들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의 상황은 과연 어떻게 될지 매일매일 동기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다가 UAE에도 전세기가 도착해 한국 교민들을 철수시키는 건 아닌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사재기가 시작되는 건 아닌지..

매일 새로운 뉴스가 나오고 상황이 변한다.


지금은 주어진 것을 하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아마 며칠 후에는 갑자기 한국에 가게 될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덤덤하게 비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가족들이 나 때문에 난리다.


 



부디 모든 게 큰 상처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도 내가 살고 있는 UAE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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