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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19. 2020

UAE 승무원, 진짜 위기의 시작

며칠 전, UAE에서 엄청난 발표가 있었다.

바로 모든 종교 활동 및 모임을 금지한다는 것.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고 전 세계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는 요즘에는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 소식을 들은 나와 동기들은 순간 얼어버리고 말았다.

이미 그 하루 전 모든 공원, 짐(gym), 영화관을 당분간 폐쇄한다는 발표가 있었음에도 사실 별로 동요되지 않았던 우리였다.


UAE는 무슬림 국가다.

아무리 UAE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많이 열려 있고 두바이가 관광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UAE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무슬림의 나라다.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하는데 기도 시간이 되면 버스 기사라도 차를 길에 세워두고 기도를 할 정도로 그들에게 기도는 삶의 목적이나 다름없다.

그런 나라에서 종교 모임을 금지했다.

여태까지 꽤나 덤덤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나는 그다음 날 파키스탄 카라치에 들렀다 오는 턴어라운드 비행이 있었다.

카라치 비행은 항상 만석일 뿐만 아니라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유명하다(자세한 이유는 적지 않겠다 ㅠㅠ).

갑자기 그 비행을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인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일 비행 가면 안 되겠지?"

"응. 언니. 무조건 콜씩(병가) 내."


사실 승무원들은 일반 직장인들보다는 쉽게 병가를 낼 수 있다.

아픈 몸으로 비행을 하는 것이 오히려 승객들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 하루 정도의 병가는 딱히 증명서를 요구하지도 않으므로 전화 한 통이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그래. 내일은 진짜 못 가겠어."


그렇게 우리의 걱정스러운 대화는 시작됐다.


"차라리 이런 때는 한국에 가는 게 나을 거 같아."

"근데 일단 UAE를 나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 돌아와도 2주나 자가격리해야 한다잖아."

"그렇다고 이제 비행도 없는데 두바이에 있어봐야 뭐하겠어."

"요즘 같은 때는 한국 가는 것도 민폐야. 오히려 코로나가 역유입된다고 하잖아."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한국 가는 비행기표를 끈고 싶었지만 이런 불안한 시국에 쉽게 UAE를 떠날 순 없었다.

결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내일은 슈퍼 가서 한 달치 물이랑 휴지라도 사다놓자는 웃음 섞인 이야기로 애써 서로를 위로한 채 헤어졌다.




카라치 비행은 다음날 저녁 8시였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병가를 내는 것이 맞는 일인가 생각했다..

내가 병가를 내고 비행을 펑크 낸다면 대기 중인 다른 동료가 불려 가게 될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그렇게 위험한 일이라면 이미 우리나라의 수많은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을까?

한국의 간호사들은 일손이 부족한 대구, 경북 지역 현장에 자원해서 일을 하러 가기도 한다는데..

우한에 첫 전세기를 띄워 교민들을 데려올 때 자원한 대한항공 승무원들을 보며 같은 승무원으로서 가슴 뭉클했던 기억을 떠올리니 고작 뉴스 한 장에 내가 맡은 비행을 말아버려는 나 자신이 좀 부끄럽게 느껴졌다.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늘 하던 비행인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

눈에 띄게 대단한 무언가를 이뤄내는 사람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의미가 될 수 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자리를 지키는 일이더라고.


지난 5년 동안 비행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아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가를 많이 냈다. 대부분 친구들과 신나게 먹고 마시고 놀다가 계획적으로 낸 경우였다.


그래. 이번만큼이라도 그냥 내 자리를 지켜보자.

난 분명히 또다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병가 시스템을 악용할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한 번만이라도 담담하게 내 자리에 있어보자.





최근에 들은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내가 한 선택이 맞는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옳은 선택을 했을 때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아쉽기도 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고, 몸이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에는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결국 비행을 가려고 결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저녁 비행이니 그날은 느지막이 일어났고 점심을 든든하고 먹은 뒤 다시 낮잠도 조금 잤다.

언제나 그렇듯 화장을 하고 머리를 묶었다.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황색 블라우스(우리 항공사는 유니폼 블라우스 컬러가 다양함)와 바지 유니폼을 입고 문밖을 나섰다.

자동차에 시동을 건 뒤, 신나는 노래를 틀을까 하다가 왠지 모르게 찬양이 땡겨 CCM을 틀었다. 주여..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두바이인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평소보다 빨리 회사에 도착하고 보니 휑한 주자창이 눈에 띈다.

원래 같았음 엄두도 내지 못할 명당자리에 주차를 했다.

그럼에도 마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크루들로 바글바글 해야 할 회사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왠지 쓸쓸한 마음도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회사 카페에서 커피를 샀고 언제나 그랬듯 크루 전용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했는데, 방역의 이유로 지금은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원래 비행하기로 했던 사무장이 병가를 냈다고 했다.

그래서 대기 중인 사무장이 대신 불려 왔다.

요즘은 흔히 일어나는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비행 초반에는 어찌나 예민하고 긴장되던지.

수도 없이 비누로 손을 씻고 손세정제를 사용했다.

탑승 시, 승객들의 탑승권을 확인하는 것이 내 업무인데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과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냥 하던 일이 하던 일이었다.

내가 5년 넘게 하고 있는 일이고 익숙한 일이었고 익숙한 비행이었다.

다행히 좋은 크루들을 만났고 원래 그랬듯 서비스가 끝나면 뒷 갤리(비행기 부엌)에서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웃었다.




그렇게 이번 비행이 끝났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당분간은 비행이 없을 예정이다.

이번 달 이후에 예정돼있던 비행은 모두 취소되었다.


앞으로는 무엇을 하며 이 시간을 보낼지가 중요하다.

나도, 동기들도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라 다들 당황하고 불안해한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모여 간단한 재료들로 호박 부침개를 해 먹었다.

그동안은 서로의 스케줄도 다르고 휴가 등으로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는데.

모두가 동시에 같은 상황에 놓이자 의지 할 건 서로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하지만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처음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이야기, 트레이닝받던 이야기, 얼마 전 사직하고 돌아간 예전 동기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결국은 '앞으로 뭘 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소소한 재료로 한국음식을 해 먹으며 즐거워하던 초심은 조금 찾았던 거 같다.




다행이다. 그래도.

함께 이 위기를 겪어 낼 사람들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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