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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un 03. 2020

해고 위기에 놓이다

비행을 안 한지는 3개월이 이제 조금 넘었다.

두바이에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3개월을 지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며 두바이에서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땐 한국이든 외국이든.. 어디로든 쉽게 떠났으니까.


코로나로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나가지도 돌아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언젠가 괜찮아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고 하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갑자기 엄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떡하지?


 




그러다 5월 중순쯤이었을까?

출국을 자제시키던 회사에서, 원한다면 최대 6개월간 기본급을 안 받는 조건으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난 망설이지 않고 무급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주, 한국에 드디어 돌아왔고 지금은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사실 마음을 많이 비우고 들어왔다.

전 세계 항공업계가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직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비행 수가 겨우 기존의 10프로 정도밖에 되지를 않고 그중에도 여객 비행은 1~2프로 수준. 나머지는 화물기로 띄운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사가 고민할 수 있는 건 어떻게 해서든지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겠지.

회사 입장에서 매달 기본급을 지불해야 하는 승무원들의 수를 줄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머리로는, 계산기로는 모든 것이 쉽게 답이 나온다.


이미 주변 여러 대형 항공사에서 공식적으로 해고를 시작했다.

중동에 위치한 항공사 중에서 해고 얘기가 나오지 않은 회사는 아직 까지 우리 회사뿐이다.

하지만 조만간 우리 회사에서도 해고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사를 보게 될 것만 같다.

우리 회사만이라도 조용히 지나가길 너무너무 바라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만약 불가피하게 해고가 시작된다면 어떤 기준으로 해고가 이루어질까?

다른 대형 항공사들의 경우를 보니 보통 트레이닝 중이거나 3-6개월의 수습 기간 중에 있는  승무원들 우선순위로 구조조정이 되는 것 같더라고.

급여가 높은 상위 클래스 담당 승무원들도 위험한 것 같고..

비자나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는 승무원들도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아닐 거야.

나는 6년 차고, 아직 주니어 승무원이라 급여도 많지 않고..

비자도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아닐 거야.

그동안 비행하면서 근태도 나쁘지 않았고 별 이슈도 없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위로하다가도.

특별한 기준 없이 해고 메일을 돌렸다는 옆 항공사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다시 착잡해진다.

항공업계에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만약 정말 간절하게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거나..

이제 막 트레이닝을 끝나고 비행을 시작하려고 하는 시점이라거나..

이제 1년 정도 지나 점점 비행도 익숙해지고 두바이 생활도 적응해가는 시점이었다면 더 속상했겠지?


퇴사도 고민하고 있었고..

빠르면 내년 2월 정도에는 퇴사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기도 했었으니까..

그동안 두바이에서 정말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

여행도 실컷 했으니..

이젠 떠날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해도 덜 아쉬울 거야.


아무리 정신 승리를 하려고 노력해도 평정심을 찾는 게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나는 자르지 말라고... 회사 바지끝이라도 부여잡고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확산을 겨우 잠재워도 또 금세 다른 어딘가에서 재확산이 일어나고..

언젠가는 끝날 고투 일까?


집 밖으로의 외출을 금지시키고 슈퍼, 약국, 주유소만 열면서 사람들의 이동을 최소화한다고 한들 통제는 푸는 순간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확진자가 나온다.

그 한 명의 확진자가 또 2차 3차 감염을 만들어 내고..


그럴 때마다 모든 걸 다시 셧다운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코로나의 종식 같은 것은 없을 것만 같다.

그냥 앞으로는 쭉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지..




나는 어떻게 될까.

그 전에도 몰랐지만 지금은 더 모르겠다.


앞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고작 내 발등 밖에 안 보인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난 나이를 먹는다.

월세와 공과금과 보험료와 내도 내도 끝이 없는 학자금 대출은 여전히 매달 빠져나간다.


발등만 보고 걷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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