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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11. 2020

내가 무급휴가를 연장한 이유

12월까지 무급휴가를 연장했다.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8월 말이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아쉽긴 했지만 두바이에 두고 온 내 살림살이들이 걱정됐다.

일단 두바이에 들어가서 비행을 다시 시작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기도 했고.



나는 지금 친구네 카페에서 하루에 세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운이 좋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요즘은 일자리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내 나이에 알바 자리 구한다는 거 자체가 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알바몬에 웬만한 구인 공고를 보면 대부분 나이 제한이 있다. 25세 이하만을 뽑는 곳도 태반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겨우 2-3개월 일하고는 다시 두바이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떤 사장이 이런 아르바이트생을 뽑고 싶을까.

난 정 안되면 쿠 x 단기 알바라도 뛸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네 카페가 갑자기 바빠지게 되어 추가로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하게 된 건 너무나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루에 세 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동안 못 본 친구들을 만나며 6월, 7월 그리고 8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중동 항공사에서는 해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회사는 나름대로의 우선순위를 매겨 해당 승무원들에게 해고 메일을 돌렸다.

그렇게 주변 항공사 승무원들이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쯤.


우리 회사에서도 결국 칼을 빼들었다.


갑자기 회사 동생이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회사에서도 내일부터 메일 돌린대...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메시지였다.

예상 못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현실이 되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잠에 들고 싶은 기분뿐이었다.

어떻게 될지 생각을 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없었다.

얼른 내일 하루가 지나가고 무사히 아무 일도 없이 모든 게 끝나기만을 바랬다.





다음날이 됐고 같은 회사 크루들이 가입된 비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이 한두 개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동료들이 이메일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이메일에는 미팅 장소와 날짜 시간이 적혀 있었다.

미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메일을 받지 않은 크루들도 함께 우리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니기를 한마음으로 바랬다.

다행히도 내 메일함은 조용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다가도 이렇게 된 현실이 정말 참담했다.

이메일을 받은 크루 중엔 나와 잔지바르 비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친구도 있었다.   



다음 날이 되었고 모두들 회사에서 어떤 통보를 받았는지 첫 번째 시간대에 미팅을 가진 크루가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기다렸다.

모두들 조용했다.. 그가 다만 어떤 얘기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후, 처음 미팅을 가졌던 크루가 자세하게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겨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나 같았으면 그 기분에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을 거 같은데 ..


다행인 건 다른 회사들처럼 해고는 아니었고 1년간의 무급휴가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상황이 좋아지면 그보다도 더 일찍 돌아올 수 있게 할 거라고.

비자와 보험 모두 그대로 유지된다는 조건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항공사가 감원조치를 취했다.

무급휴가를 먼저 신청받고 할당량이 채워지지 않을 때 해고를 시작한 회사도 있고.

일단 해고를 통해 전체적인 인력 규모를 줄이고 무급휴가를 신청받은 회사도 있었다.


 

나와 꽤 가까웠던 다른 항공사 지인들도 해고를 당했거나, 무급휴가를 신청했거나, 스스로 그만두었다.






한국 생활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카페일도 잘 적응했고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즐거웠다.

엄마와 더 많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고정 지출을 빼고 나면 모아둔 돈에 손을 대야 하는 현실이었지만 9월부터 다시 두바이로 돌아가 비행할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크지는 않았다.

한국생활이 끝나가는 건 아쉬웠지만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컸다.


말 그대로 '현타'가 올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회사에서 의미 심장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



직원들에게 올해 말까지 휴가를 연장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주택보조비는 지원받을 수 있으므로 상황이 회복될 때까지 고향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HR에서 공식 이메일이 온 후, COO와 부사장까지 힘든 현재 상황을 언급하며 함께 이 상황을 이겨내 보자는 내용의 개인 이메일을 다시 보내왔다.


강요는 아니었다.

엄연히 신청을 받겠다는 내용이었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12월까지 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두바이 날씨가 좋아지는 10월이나 11월에 돌아가면 딱 좋겠다.. 하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고 나면 또 한 살을 먹게 될 거라는 사실도 두려웠다.



 




그래도 결국 나는 휴가 연장을 신청했다.

사실..

회사에서는 비행하지 않는 크루들의 기본급을 지급하는 것이 버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그마저도 지급하기 어렵게 되는 순간...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

사실 그게 더 두려웠다.

그래서 연장하기로 결심했다.

당장 기본급이 아쉬운 것 보다 아예 직장을 잃게 될거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언젠가는 돌아가겠지.



언제 다시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할지는 모르겠다.

다시 예전처럼 비행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궁금하다.

내년이면 다시 비행할 수 있을까?






많은 항공사 크루들이 몇 개월째 일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비행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너무나 캄캄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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