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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y 23. 2020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

곧 한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UAE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꾸준히 있었다. 

외교 차원으로 몇몇 국가의 자국민 송환 비행은 여전히 허락해 주는 상황.

하지만 다시 UAE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아직까지는 없었고 회사에서도 국가 간 이동을 자제시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뿐이다. 


주변 대형 항공사들의 잇따른 구조조정 소식도 한 몫했다. 

이미 공식적으로 구조조정을 공지한 대형 항공사도 몇 있다. 

주변 항공사 승무원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가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심난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현재 휴가차 자국으로 갔다가 락다운(lock down)으로 인해 UAE로 돌아오지 못하는 승무원들에게 해고 통지 메일이 돌고 있다더라.. 

수료를 앞둔 트레이니들에게 계약 취소를 통보하고 자국으로 돌려보냈다더라.. 

재계약을 앞둔 승무원에게 더 이상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이메일을 보냈다더라.. 등등이다. 

다 친구의 친구와 같은 두 다리 세 다리 건너 들은 소식들이지만 전혀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와중에 회사의 권고사항을 어기고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이메일이 왔다. 

희망 무급 휴가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비행을 거의 못하는 우리 회사 승무원들의 현재 월급은 기본급+주택보조금으로 되어있다.

그중에 주택보조금은 지원해줄 테니, 자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최대 6개월까지 신청 가능하니, 안식월을 보내라는 내용. 


나와 내 친한 동기들은 너무 기뻤다. 

드디어 한국에 갈 수 있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난 4월, 5월은 전혀 비행하지 못했고 3월은 짧은 비행을 고작 3개 했을 뿐이다. 

거진 3개월간 일하지 못하는 상태로 'stay home' 해야만 했다. 

그중에 3주는 24시간 통행금지로 슈퍼에 가는 것조차 온라인으로 퍼밋을 받아야 했다. 

라마단이 시작된 4월 말부터는 통행금지 조치가 완화되고 쇼핑몰도 재오픈하면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하지만 라마단이 끝나는 지금, UAE는 다시금 통행금지 조치를 강화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지난 3개월의 대부분을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보냈다. 

마냥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니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타이트하게 식단관리를 하고 운동을 했고 지금 어느 정도 목표 몸무게에 도달했다. 

그전에는 이래저래 보기 힘들었던 동기들과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나 자신도 많이 돌아보았고, 비행하던 시간 마음껏 돌아다니며 여행하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깨달았다.


 

코로나를 막기 위해선 'stay home' 하라고 한다. 

나가지 말고, 타지 말고, 만나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있어야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동하는 게 직업이었고,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자유에 행복했던 삶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자 아무것도 남지 않아 진 느낌이었다.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고 전용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비행기에 타고. 

근무가 끝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CREW ONLY'라고 쓰인 전용 통로를 이용해 승객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입국 심사를 받았다. 

전용 통로에 여유롭게 서서 동료들과 얘기를 나눌 때면 어쩔 수 없이 고개가 빳빳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해 각자 방키를 받아 들고, 혼자 여행이라면 절대 묵지 않았을 4-5성급 호텔방에 짐을 풀고 런드리 백에 유니폼을 벗어 문 바깥에 걸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근처 슈퍼에서 현지 과일과 야채, 고기 등을 사는 것을 좋아했다. 


그땐 익숙했던 그 일들이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한국에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주변에 많은 승무원들이 이렇게 말한다. 

외국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며 언제 가는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갈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는 아니라고. 

이렇게 쫓기듯이는 아니라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주택보조금으로는 비어 있는 두바이 집의 월세와 공과금을 내야 하니, 그걸 내고 나면 수입은 0원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감사하다. 

완전 무급이었으면 휴가 기간 동안은 꾸준히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거다. 

마이너스가 아닌 게 어디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14일 동안 자가격리할 장소도 마련해두었고, 격리가 끝나고 나만 괜찮다면 친구가 자신의 카페에서 오전 시간에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고마운 제안도 받았다.

한국에서의 삶이 극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환경만 조금 달라질 뿐. 

겨우 마이너스를 면하기 위해 또다시 아등바등 하겠지. 




얼마만의 한국행인지 모르겠다. 

이번에 좀 짠하다. 

비행기 바퀴가 인천 공항에 닿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날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적 대 혼란의 시기에 외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있는 것은 조금.. 불안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 대한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항공업계가 다시 원래 수준으로 운항하기 위해선 1년 이상이 걸릴 거라는 우울한 추측들이 이어지고 있다. 


난 결국 스스로 포기할까?

아님 회사에 의해 억지로 그만두게 될까. 

아님. 

이렇게 꾸준히 버티고 버텨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비행하며 그때 그랬지 할까. 


그래도 일단은 들뜬다. 

한국이잖아. 

2주 자가격리 시간 동안의 식단표와 운동 계획표도 미리 짜두었다.  




조금 느긋하게 바라볼까?

아무도, 아니 적어도 나 자신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 시기가 어떤 식으로 풀려나갈지. 

난 원래부터 인생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음 지금은 그 생각의 확장팩을 끼울 때라고.

 

그렇게 한국에 가는 것과 그 이후의 삶을 덤덤하게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한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버티느라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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