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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Nov 30. 2020

폭식증 때문에 응급실까지 실려가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딱 두 번 응급실에 실려 가 봤는데, 두 번 다 같은 성분의 약을 같은 이유로 먹고 나서 몸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두 해프닝은 폭식증에서 비롯되었다. 폭식증이 이렇게나 무섭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심해진 폭식증 증세와 더불어 망가진 생활 패턴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가끔 쓰리던 위가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공복에 커피만 마시고 온종일 굶다가 저녁에 술 마시고 집 와서 초콜릿 폭식하는 것을 반복했으니, 솔직히 안 망가진 게 이상할 정도의 생활 패턴이기는 했다. 시험기간에 위가 너무 아파서 GP에 전화를 했지만 당연히 당일 예약이 될 리가 없었다. 급한대로 인터넷에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위통약을 검색했다. 그리고 약국에 가서 제산제를 사 먹었다.

난 제산제를 먹고도 집에 와서 아이스크림 파인트를 퍼먹었다. 아직도 그 아이스크림이 뭐었는지도 기억이 난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스스로가 좀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칼로리를 생각한다며 고른 헤일로 탑 저칼로리 아이스크림 파인트. 그걸 퍼먹으면서 먹으니까 역시 위가 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뜨고 있으면 아무래도 계속 먹다가 위에 탈이 나도 단단히 뭔가 탈이 나 버려 뭔 일 나겠다 싶어서, 차라리 시험공부고 뭐고 차라리 빨리 잠이나 자기로 했다.

그렇게 자다가 자정 즈음 눈이 번쩍 떠졌다. 몸이 간지럽고 뜨거웠다. 침대에 벌레가 있나 싶어서 일단 샤워를 했다. 그래도 낫지 않자, 진드기 알레르기 같은 건가 싶어서 한국에서 챙긴 알레르기 약을 먹었다. 그러나 점점 숨이 가빠지고 두피가 간지럽고 목 안쪽과 혓바닥이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느낌이 왔다. 한 번도 불러본 적은 없지만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는 느낌이.

구글에 런던 구급차 번호를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다. 내 상태와 주소를 불러줬다. 전화를 끊고 나니 상태가 급하게 악화됐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위경련 증상이 나타났다. 설사할 것 같은 느낌도 오고, 구토를 할 것 같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점점 숨 쉬기도 힘들었고, 두피와 몸속도 점점 간지러웠고, 육안으로 보기에도 몸에 빨간 반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침대에 기대서 숨을 쉬려고 하고 있는데 현관문을 쿵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은 현관문 바로 앞에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올라와야만 거실, 방, 화장실 등 모든 생활공간이 있는 구조라 문을 열기 위해서는 내가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그 계단을 내려가다간 굴러 떨어져서 더 큰 부상을 입고 응급실에 다른 이유로 실려갈 것만 같았기에 룸메이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답이 없었다. 평소엔 2,3시가 넘어서 자던 그녀였으나, 그 날은 그녀 역시 자정도 되지 않은 시간에 잠이 든 것이었다. 한 5번은 큰 소릴로 이름을 불렀을까. 놀라서 깬 룸메이트가 내 방으로 달려왔다. 문 좀 열어달라는 내 말에 그녀는 잽싸게 문을 열었고, 응급 대원들 셋 정도가 우르르 계단으로 올라왔다.

그 순간, 나는 급 설사의 기운을 느꼈다. 모두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화장실로 걸어가서 설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한 응급 대원은 화장실 문을 반쯤 열고 ‘아 유 오케이’냐며 내 안부를 묻고는 나의 ‘오케이’라는 다급한 대답을 듣고 나서야 화장실 문을 1/3 정도 열어 놓은 채로 내 시야에서 벗어나 주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응급 대원들이 나를 부축해서 겨드랑이를 잡고 좁을 계단을 질질 끌고 내려갔고, 들것에 눕혀 차에 태워주었다. 들것에 눕자 숨쉬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대원 중 하나가 아드레날린 주사를 꼽을 것이라며 무언가를 내 몸속에 주입했다. 그렇게 응급실로 오밤중에 실려간 나는 검사를 위해 피를 뽑고, 위 진정 주사를 맞고, 알레르기 완화 주사를 맞고, 수액도 맞고, 부기를 가라앉히고, 룸메이트가 부른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벽 4시쯤 귀가한 후, 결국 그 날 새벽 8시 15분에 예정되어 있던 시험은 보지 못 했다. 폭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첫 에피소드다.

첫 응급실의 충격 이후, 난 놀란 마음에 당연히 식이 조절을 했다. 응급실에서는 위 진정 약도 처방해 주었고, 위에 좋은 음식인 감자만 먹으라고 얘기를 해 줘서 한 열흘 정도는 죽과 감자만 지겹도록 먹었다. 그리고 위가 좀 나았다. 좀 살만했는지 간사하게도 폭식, 그놈이 또 찾아왔다. 열흘 간 참았으니 더 강력하게 찾아왔다. 위는 당연히 또 망가져 버렸다.

얼마 뒤, 방학을 맞아 한국을 잠시 방문하게 되었다. 한국에 방문한 김에 위를 고치고 싶어서 소화기 진료로 유명하다는 동내 내과를 찾아갔다. 내 증상을 설명했다. 폭식증, 영국에서의 위통, 제산제 알러지, 응급실, 전부 다. 그리고 위장장애 약 처방을 받았다. 병원을 나오면서 폭식을 멈추고 다이어트를 시작해보자, 건강하게 한국을 떠나자, 하고 희망차게 의지를 다잡았다. 그런데 웬걸. 약을 먹고 조금 있다가 엄마를 만나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팔다리가 저릿저릿하더니 못 걷겠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나의 <어느 날 눈을 뜨니 마비 환자가 되었다> 관련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예전에 수술을 한 이력이 있어서 이런 신경과적인 통증에 굉장히 민감하다. 혹시나 내가 못 걷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날도 갑자기 또 종양이 생긴 건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면서, 쇼핑을 하다 말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술이 붓는 느낌, 목구멍이 조이는 느낌이 들자, 이게 뭔지 깨달았다. 알레르기다. 이건 약 알레르기다. 그때 그 느낌이다. 다만, 더 강력할 뿐.

엄마한테 응급실에 바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일단 약을 처방받은 내과로 가서 증상을 얘기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고 내과로 가기 시작했다. 차는 막혔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수액을 맞기 시작했으나, 증상은 악화되었다.

근육이 굳는 느낌이었다. 왼쪽 손의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뻣뻣해졌으며, 근육이 가려운 느낌이 들었고, 이전 알레르기 반응과 비슷하게 설사와 구토를 할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호흡이 불가능 해 졌다. 수액을 맞고 있는데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다. 구토를 하고 병실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눈 앞이 하얘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설사가 비죽비죽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 망했다. 누가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어떡하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숨을 못 쉬겠는 고통에 너무 아파서 차라리 지금 기절했다가 눈 뜨면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는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엄마가 나보다 더 당황한 것 같아서 옆에서 날 부축하는 병원 간호사에게 ‘구급차 좀 당장 불러주세요’라고 얘기했다. 그녀가 전화로 구급차를 불렀고, 순식간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 와중에 옆에서 엄마는 내과 의사에게 ‘왜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같은 성분의 약을 처방했냐’고 물었고, 그는 ‘이전에도 처방받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냥 같은 약을 처방했다’는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구급대원들의 부축을 받아 들것에 실려서 또 다시 한번, 응급실로 실려갔다. 이 것이 나의 폭식증으로 인한 응급실 두 번째 에피소드다. 같은 약으로 인해 같은 반응이 나타난 것이었으나, 원래 이런 알레르기 반응의 경우, 반복해서 반응이 나타날 경우 몸이 더 격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점점 더 호흡 곤란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아찔한 일이다. 이 일을 계기로 새로운 약 먹는 것에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겼을 정도다.

두 번째로 응급실에 갔을 때는 영국이 아닌 한국이었고, 보호자로 친구들이 아닌 엄마가 함께 갔으니 첫 번째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더 활발했다. 엄마는 내가 자는 동안 내가 폭식증으로 인해 위장 장애를 심하게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생각보다 비슷한 이유로 응급실에 오는, 비슷한 나이 때의 환자들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추천으로 그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폭식증의 보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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