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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Nov 30. 2020

식이장애에 상담치료를?

식이장애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면 공감이나 이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앓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음식을 보면 이성을 놓고 토하거나 아플 때까지 먹는다는 것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은 정말 부끄럽다. 나도 그래서 2년 넘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더 이상 안 되겠다.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멍청하고 의지박약이라 식습관 장애를 앓는 것이 아니라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 명확해졌고, 나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었다.

원래도 약했던 나의 위는 폭식증 이후로 더욱 상태가 악화되었다. 결국 동네 내과에 가서 위장장애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복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이 가려웠고, 입술과 혀가 부어올랐고, 점점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제산제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이었다. 대학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담당 의사에게 위장 장애 약을 먹게 된 경위를 얘기하면서 폭식증 얘기도 하게 되었다. 그는 폭식증을 앓는 환자들이 종종 위장장애 약을 먹고 응급실에 온다고 말하며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총 세 군데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식이장애 치료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첫 번째 대학 병원 정신과 의사는 내가 심한 식이장애 환자가 아니라고 했다. 일단 폭식 후에 토를 하지 않고 거식증으로 인해 영양 불균형이 심한 상태가 아니면 심한 상태의 식이장애는 아니라고 했다. 그가 약을 처방해주는 것을 보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나는 내 몸이 제어가 되지 않고 스스로를 자꾸만 해치게 되는데 이게 심한 게 아니라니, 왠지 내가 괜히 병원에 와서 별것도 아닌 걸로 투정을 부리는 어린애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처음으로 복용할 정신과 약에 막연한 두려움과 더불어 치료 효과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도 했다. 약은 결국 별로 효과를 보지 못 해서 끊었고, 그러면서 그 병원도 가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 병원을 찾아간 계기는 마음이 약해져서였다. 어느 오전의 폭식 직후, 나의 배부름에 혐오를 느끼고 나의 박약한 의지에 질려서 동네 당일 접수가 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신경안정제든, 항우울제든, 아니면 급한 대로 식욕억제제든, 그냥 뭐든 도움을 받고 의지를 해야 할 것 같이 약한 마음이었다. 의사는 내 얘기를 듣더니 내가 민망할 정도로 내 상태에 너무 공감을 했다. 거울을 보면, 체중계 위에 서면 너무 뚱뚱해 보이는 나 자신, 살이 빠지고 옷을 입을 때의 희열, 그럴수록 집착하게 되는 음식, 멀리하고 싶은 수록 할 수가 없는 음식, 너무 싫어하지만 또 너무 좋아하는 음식. 그녀는 폭식증이 정말 고치지 힘들며, 특히나 어려서 비만했던 사람이 체중 감량을 한 번 하고 나서 식이 장애가 생기면 정말로 고치지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리고 폭식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오는 젊은 여성들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그런 공감에 나는 이상한 미친 사람, 혹은 식욕 하나 통제 못 하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아간 계기는 절실해서였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 시작일이 늦춰진 시점에서, 내게 주어진 몇 달간의 갑작스러운 여유야말로 폭식증을 고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또 해외로 출국해서 홀로 생활하기 전에 식이장애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시간은 가는데 나는 계속 제자리였다. 작심삼일도 그런 작심삼일이 없었다. 역시나 옛 속담에는 인생의 경험과 지혜가 들어있는지, 마음을 먹고 폭식을 하지 않고 삼일이 흐르면 나흘 째에는 어김없이 아침부터 터지려는 식욕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해가 지면 이성을 놓고 먹어버리는 것이 반복됐다. 달력만 보면 다가오는 디데이에 숨이 막혀왔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가슴이 막 뛰고 목이 조여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다.

나는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받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약해지고 무너질 것 같다면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이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고작 식욕 하나 조절하지 못하는 걸로 스트레스받는다는 것을 말하기가 부끄럽다고 할지라도 생각보다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분명 누군가에게 문제를 이야기하고 해결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많은 도움과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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