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고생했다. 나이가 들면 점점 괜찮아진다는 이 고질병은 어째 해가 갈수록 날 더 괴롭게 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는 긴장만 하면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중요한 날이면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가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하기 일수였다. 특히나 수학 시험이 있는 날에는 꼭 그랬다. 내가 싫어하는 수학,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수학. 수학 시험을 보는 날에는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서 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문제 풀이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호가 강하게 오는 날에는 망한 것이다.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 수학인데 시험을 보다가 화장실에 갈 수는 없으니 꾹 참고 기다렸다가 종이 치면 시험지를 제출하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
고등학교 내내 그랬고, 수능 시험을 보는 날 아침에도 그랬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는 날에도, 회사 면접 날에도 그랬다. 꾹 참았다가 화장실에 달려갔다. 가장 컨디션이 완벽해야 하는 날 난 늘 화장실이 급했고 배가 아팠다. 그래도 그려려니 했다. 평소에는 괜찮았으니까 그냥 긴장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긴장하지 않아도, 평소에도 배가 살살 아프고 계속 장에 가스가 가득 들어찬 불편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폭식증으로 인해 위장장애가 심해지면 서부터로 기억한다. 그때쯤 내가 이 증상으로 여러 내과를 방문하기 시작했으니까.
화장실이 가고 싶은 느낌이 드는 건 무시하면 됐다. 어차피 가 봤자 소득도(?) 없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정말 불편했던 것은 저녁마다 내 장에 차는 가스였다. 배를 문지르면 물이 차있는 듯이 구루 룩 구 루룩 하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정말 장에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위와 대장 내시경도 했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에게 물었다.
“아무 이상이 없는데 밤마다 제 배에서 나는 이 물소리는 뭐죠?”
의사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고 했다. 그놈의 과민성 대장 증후군. 고등학생 때부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늘 지겹도록 들었던 그 이름. 고치기도 어렵고 그저 평생 ‘안고 가며’ ‘다스리고 가야’ 한다는 그 고질병. 그녀는 소화를 돕는 약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뿐이고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다.
한 번은 지인으로부터 성상신경절 차단술이라는 시술을 추천받게 되었다. 이 시술의 원리는 교감신경을 잠깐 꺼뜨리는 것이다. 내게 이 시술을 추천한 의사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남들보다 장에 느껴지는 감각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이 장에 가스가 10이 찼을 때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나 같은 사람은 5,6만 차도 가스가 차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감각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교감신경을 잠깐 무디게 만드는 시술을 통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치료하는 것이다.
시술을 꾸준히 받자 저녁마다 가스가 차는 듯하던 내 장이 잠잠해졌다. 삶의 질이 조금 상승됐다. 그러나 또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자 또 신기하게도 바로 시술을 받아도 장이 날뛰기 시작했다. 시술의 효과를 보면서 시술 빈도를 줄여가고 있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의사는 내게 시술이야 계속해서 받을 수 있고, 몸에 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멍 때리는 법’을 연습하라고 했다. 시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혼자 멍을 때림으로 인해서 교감신경을 진정시키고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을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 스트레스 해소? 또 이 얘기야?
폭식증 해결을 위해 처음으로 방문한 한의원에서는 내 통제가 되지 않는 식욕이 ‘불안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나의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모두 내가 나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악화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폭식 일기에도 반복되어 나타나는 내가 폭식을 하게 되는 원인은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였다.
결국 다 연결되어 있었던 걸까? 반복되는 진단, 어느 병원에 가나, 어느 과에 가나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내용. 내 몸이 보내는 많은 신호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난, 내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 그것을 터뜨려버리는 방식으로 먹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내가 꾹꾹 눌러 담고 참아낸 감정들, 가끔은 그것들이 눈물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더 편안한 방법은 식욕으로 표출되는 것이었다. 다 내려놓고 그냥 먹는다. 먹는 행위에 집중한다. 씹고, 넘기고, 씹고, 넘기고. 그 순간만큼은 다 잊을 수 있다. 화와 짜증, 답답함으로 인해 엉켜버린 내 뇌가 하늘로 떠오르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 때까지 먹는다.
계속해서 먹다 보면 뇌가 떠오르는 기분 좋은 느낌은 사라져 버린다. 배부름과 속 더부룩함이 느껴지고, 같은 음식을 계속 먹다 보니까 질려서 처음처럼 맛있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때쯤이면 짜증이 느껴지지만 이미 손과 입을 멈추기에는 늦어버렸다. 이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먹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