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식이장애가 절정에 달했을 당시의 나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먹다가 씹고 뱉다가 다시 먹다가 소화제를 먹고 다시 먹다가... 식욕의 노예가 되어 몸을 조종당하는 기분이었다.
사실, 어제도 나는 폭식을 했다. 오랜만에 꽤나 심각한 폭식 에피소드가 찾아왔다. 얼마나 심했냐 하면 나는 또 먹다가 활명수를 하나 먹고 배가 편해지자 다시 먹기 시작했고, 결국 눈에 보이는 음식들을 다 먹어 치우고 잠을 잘 무렵에는 왼쪽 위에 큰 돌덩이 하나가 얹어진 듯 너무 아프고 차가운 감각마저도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의 몸을 내려다보니 배에는 심한 폭식 후에 늘 나타나는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와있었고,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으며, 술을 마시지도 않았음에도 심한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온몸이 아프고 무겁고 속은 메스꺼웠다.
지난주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갔을 때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늘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폭식을 하지 않는 날에는 운 좋게 폭탄이 터지지 않아서 잘 넘어간 기분이고, 폭식을 한 날에는 ‘아, 드디어 폭탄이 터졌구나’, 생각이 들어요.”
늘 폭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하다. 이 폭탄이 오늘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음을 잘 다스려줘야 한다. 내 마음이 어떤지, 내 안의 폭탄이 어떠한 상태인지 자꾸만 들여다봐 주어야 한다. 그리고 폭탄이 터지지 않고 안전하게 넘어간 다음날 아침에는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동시에 오늘은 또 어떻게 이 폭탄을 다스릴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요즘은 주말이 되면 왠지 폭식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이 든다. 토요일 오후까지 어찌 넘기면 토요일 저녁에는 어김없이 온갖 정신이 음식으로 쏠려버린다. 결국 먹고, 일요일 아침을 후회와 함께 맞는다. 그러나 폭식을 한 날 다음 날에는 식욕 조절이 더 힘들어진다. 내 마음은 ‘어제 폭식했는데 그냥 오늘도 먹고 포기해. 내일부터 다시 마음 잡으면 되지’, 와 ‘오늘은 폭식을 하지 않겠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한다.
주말에 폭식을 하는 것은 내가 미리 폭탄을 터뜨려버리겠다는 것이다.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겠으니 내가 마음 편하게 터뜨려버리고, 그다음 폭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다음 폭탄이 생성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때로는 그다음 날 바로 폭식 욕구가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일주일 정도가 걸리기도 한다. 그래도 한 번 시원하게 폭식을 해 버리고 나면 잠깐은 안정감이 생긴다. 나는 이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앞뒤가 안 맞는다. 나는 폭식을 하기 싫은데 폭식을 한다. 그다음 폭식을 준비하기 위해 폭식을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폭식을 하기 싫은데 폭식을 하고 싶어서 폭식을 하는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나도 알 수 없는 마음이다.
이게 습관이 될까 봐 두렵다. 습관의, 식습관의 힘을, 그 두려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식이장애 환자들일 것이다. 내 속의 이 폭탄이 무섭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그 파편이 어디로 튀어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기 대문이다.
“언제까지 폭탄을 안고 살아가야 할까요?”
내 질문에 선생님은 식이장애 환자의 완치를 본 것이 매우 드물다고 했다. 그냥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절하면서 살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폭식 후에 너무 무너지지 않고 그다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폭탄을 해체하는 법을 알고 싶다. 의지를 단단하게 가지면, 병원에 가 보면, 약을 먹으면 그 폭탄이 해체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보다. 어쩌면 평생 해체하는 법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아찔해진다. 평생 음식과의 애증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니.
내가 너무 사랑하는 초콜릿, 그러나 동시에 너무 증오하는 초콜릿... 언제쯤 마음 편하게 널 대할 수 있을까. 언제쯤 유연하고 편안하게 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너에 대해서 초연해질 수 있을까...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법을 모르던 내가 이걸 계기로 또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연구를 하니까 식이장애에는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미 저질러진 일, 이미 내 안에 생겨버린 폭탄을 터트리지 않으면 다스리는 것,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니 조심조심 다스려야 하는 폭탄. 매일 폭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기분. 좋지 않지만,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한 번 해 봐야지. 폭탄이랑 살아 봐야지.
정신과 선생님은 폭식증을 깔끔하게 고치는 것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폭식을 했을 때 더 좌절이 커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일단은 폭식의 양을 줄이는 것, 폭식의 빈도를 줄이는 것, 한 번 위기를 넘어가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너무 오래 앉아있지 말고 적당히 털고 일어서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에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 폭탄, 적당히 안고 가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 폭식을 하더라도 내일은 안 하면 된다. 오늘 넘어지더라도 내일은 일어서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폭탄을 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