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외적으로는 열심히 사는 친절한 사람이다. 남의 부탁에 거절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선지 남들은 나를 보고 첫인상은 무섭지만 알고 보면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대학생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친구가 시험기간에 내 필기 노트를 빌려달라고 했다. 난 당연히 알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이 6교시를 마치고 내가 강의를 마치는 건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좋다고 했다. 강의가 끝나고 건물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동아리 연습이 생각보다 늦어져서 가지 못할 것 같다며 노트를 나중에 빌려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나는 6교시가 마지막 수업이었으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그 친구에게 또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 그 필기를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노트를 오늘 빌려주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본인의 남자 친구를 지하철역 출구로 보낼 테니 학교 앞의 역으로만 지하철을 타고 다시 와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거절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 노트를 빌려주기 위해서 지하철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타고 다시 학교로 갔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지하철 역 출구에 없었고, 결국 난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를 찾아야 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대체 내가 뭘 위해서? 나도 시험기간인데? 나도 6교시 끝나고 피곤한데?’라는 현타가 세게 왔다. 내가 이 정도로 남들 부탁 거절을 잘 못 한다.
회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팀에 계속 자신의 일을 나에게 던져주고 팀장에게 컨펌은 자신이 받아서 나의 공로를 자신이 모두 가로채는 얌체 같은 팀원이 있었다. 난 그 팀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려면 내가 일을 잘한다는 것을 팀장이 알아야 하는데, 그 얌생이 팀원 때문에 그럴 기회를 빼앗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인에게 그 팀원을 엄청 욕했다. 걔는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 팀원이나 팀장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그러나 내 성격에 그러지 못했다. 그저 그 팀원이 내게 주는 본인의 일도 하고, 원래 내 일도 하고, 팀장에게도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배로 일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면 힘든 티도 내지 않고 원래 일 잘하고 잘 웃는 성격 좋고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싫어하는 팀원과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내 애인이 봤다 (그와 나는 같은 회사에 다닌다). 그는 내게 너무 서운해하며,
“너에게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굴면서 나한테는 늘 차갑게 대하는 게 이해가 안 돼.”
고 말했다. 난 이렇게 변명했다.
“내 성격이 이런 걸 어떡해. 나도 이런 내가 피곤해. 그렇지만 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저 참고 억지로 착하게 굴면 난 정말 죽고 말 거야.”
코로나 19로 뜻하지 않게 삶에 공백기가 생기자, 난 애인에게 내 내면의 평화를 찾겠노라고 선언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어떤 것에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도록 내 내면의 평화, 나의 zen을 찾을 거야. 그게 내 유일한 목표야.”
그는 주말마다 자신에게 짜증 내지 말고 제발 좀 그러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공백기 동안의 목표를 ‘내면의 평화’를 찾는 것, 즉,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으로 삼았다.
가장 먼저 한 것은 화실에 등록한 것이다. 그림을 한 번 그려보기로 했다.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옆에 두고 아이패드 위에 그려낼 때, 내가 좋아하는 색을 캔버스나 종이에 이리저리 칠할 때나 재미있었지, 기본기부터 닦으려니 영 피곤하고 어려웠다. 선긋기, 크로키, 인물화 연습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색칠을 해도 선생님의 지속적인 코칭을 받으며 고치고 또 고치는 행위를 반복하니 어느새 화실 가는 시간이 또 스트레스가 되었다. 화요일 아침에는 화실에 갔는데, 어느새 월요일 저녁이 되면 선생님께 내일 몸이 아파 가지 못 한다는 핑계를 대고 싶어 졌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래도 8회의 수업을 통해 기본적인 형태 익히기와 캔버스에 알맞은 도구를 사용해서 색칠하는 법을 배웠으니 만족스러운 성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다음 한 것은 운동을 배운 것이다. 아, 운동이라니. 너무 뻔하다. 나도 이런 글을 쓰는 내가 싫다. 그래도 솔직하게 계속해보겠다. 일단은 골프를 등록했다. 나는 18살 때 척추 수술로 인해 신경이 손상돼서 신체 활동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격한 운동도 하지 못하고, 사실 오래 서서 밸런스를 잡는 것도 잘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는 내가 고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운동이었다. 힘도 약하고 균형감각도 떨어져서 거리도 안 나가고, 피니쉬도 제대로 안 돼서 아주 엉망이지만, 일단 골프채로 공을 때리기는 한다. 딱, 딱 소리가 날 때, 가끔 ‘오잘공’이 나서 착, 착, 감기는 소리가 날 때, 아주 스트레스가 제대로 풀리는 기분이 든다. 작은 공에 내 고민거리를 다 담는다고 형상화를 한다. 작게 작게 내 걱정과 스트레스를 다 뭉쳐버린다. 그리고 후드려 친다. 딱-!
골프 다음에는 피티를 등록했다. 나는 수술 이후로 거의 10년 가까이를 재활만을 해왔다. 재활병원에 꾸준히 외래 환자로서 물리치료를 받았고,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씩 받는 물리치료로는 몸이 낫지 않는 것 같자 재활스포츠 센터에 가서 운동을 했다. 50분 세션에 20분 근육 이완과 스트레칭, 30분 밸런스 트레이닝으로 이루어진 매우 약한 강도의 운동이었다. 폭식으로 인해 살이 10킬로 정도 찌고, 망가진 식습관과 대사로 인해 식단 조절로만 더 이상 살이 빠지지 않자, 더 격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솔직히 내 몸으로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해보고 아니면 관두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몸이 불편하니 당연히 남들보다 운동 수행 능력도 떨어지고 근육도 쉽게 생기지 않고, 모든 것이 느리고 더디지만, 일단 웨이트 운동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수술 이후 10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니 짜증이 나면서도 내 자신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도 매우 집중하는 한 시간 동안에는 음식, 걱정거리 등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서 나름 괜찮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것은 책을 읽은 것이다. 더 자세히는 소설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어려서는 책을 좋아했으나 중고등학생 때부터는 수행평가를 위한 독서가 아니고서는 거의 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는 왠지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읽어야 머리에 남는 것이 많은 것 같아서 문학을 읽지 않았다. 소설은 왠지 읽기 쑥스럽고 유치한 기분도 들었다. 물론 나의 편견이었다. 즐기지 않으며 억지로 비문학을 읽는 것 보다야 재밌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제 와서 책을 읽고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 독후감 검사를 받을 것도 아닌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생각 외로 SF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어렸을 때와는 달리 추리소설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려서 책을 읽으면 주변의 소음도 자동으로 차단될 정도로 집중해서 읽었는데 오랜만에 그렇게 푹 문학에 빠져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먹으면서 책을 읽는 것은 신체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책을 두 손으로 잡아야 하니까) 적어도 책을 집중해서 읽는 동안에는 먹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한 것은 글을 계속해서 쓴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글이 슈루룩 써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다. 식이장애에 시달리면서 가장 피곤한 것 중 하나는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음식 생각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무언가에 엄청나게 집중하지 않는 이상 먹고 싶지만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리스트가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면서 집중하면 내 글에만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물론 글을 쓰는 것은 객관적으로 나의 마음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한,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된다. 정신과에 상담을 가서
“선생님, 요즘은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라고 하자, 선생님은
“그런 것도 열심히 노력해야 하나요? 그냥 물 흐르듯이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본인은 뭐든 열심히 해야 하는 성격이죠. 뭐든 열심히 하시는 성격이 다 어렵게 만들기도 해요, 그렇죠? 그래도 열심히 해서 효과가 있었을까요?”
라고 하셨다. 나는 나대로 열심히 해서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예전에는 ‘난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지?’라고 물어보면 답이 금방 나오질 않았는데 요즘에는 ‘운동도 하고, 골프공도 치고, 글도 쓰고, SF 소설도 읽을 수 있지’라고 답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계속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