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박이 모녀
또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양육자 상담을 요청했고 엄마는 아이와 함께 앉아있다. 같이 있어야 한다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울리지 못하는 전반적인 일들과 갈등이 일어나는 패턴을 전달했고 반응을 살폈다. 양육자는 질문이나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돼. 나중에 시집 잘 가면 다 해결 돼!"
옆에 딸을 앉혀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딸에게 다시 한번 강조함과 동시에 이건 분명 내게 더는 상담을 요청하지 말라는 확언이지 싶었다.
미(美)라는 건 절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긴 하다. 이건 내가 배운 미학 관점에서 이다. 하지만 이 양육자가 말하는 미는 분명 외모를 뜻하지 싶었다.
현재의 얼굴로 미래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아이 얼굴과 엄마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정말 미안하게도 이런 생각 밖에는 안 들었다.
'글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10일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삶에서 절정의 미는 그리 길지 않다.
양육자의 유전자를 빗나가 행여나 그 아이가 절세미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지속될 수 없다.
미인이 되어서 성공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을 촉발시킨 게 아름다움 뿐이라면 나이가 들어 시들해졌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지?
생각 짧은 아이 엄마가 본인과 똑같은 딸을 양산하는 것인가 아찔해 보였다.
아이가 학교에 가서 성장하길 기대하듯 부모라면 자라는 아이를 품을 만큼 같이 자라야 한다. 아이보다 작은 생각을 가지고 반듯하게 성장한 자녀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자녀의 학교생활은 부모의 사회생활 축소판으로 보면 된다. 아이들은 양육자의 판박이로 성장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