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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적응기 9

기다림과 안정감

by Aheajigi Feb 12. 2025

다들 친절에 대한 갈망이 있나 보다. 어딜 가든 친절을 입에 달고들 사니 말이다. 이런 병적 친절 요구가 결국 이상한 높임말을 만들고야 말았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광란적 친절 요구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병원에서도 의사의 친절 여부가 환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나 보다. 교사 또한 다르지 않다. 소비자가 갑이고 모든 부분에 있어 친절을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다. 당신들 그리고 당신들의 자녀도 같은 친절 요구를 더 강하게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함은 왜 모를까 싶다.


"매우 친절하지만 치료를 못하는 의사 대 불친절하지만 치료를 잘하는 의사"

아이들에게 묻는다. 매우 아프다면 너희들은 어떤 의사를 찾아가겠냐고 말이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친절 여부에 상관없이 치료를 잘하는 의사를 찾겠다고 한다. 의사는 친절을 서비스하는 위치가 아니라 환자를 치료하는 포지션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매우 친절하지만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 대 불친절하지만 잘 가르치는 교사"

배우기 위해서 어떤 교사를 찾아가겠는지 묻는다. 아이들은 잘 가르치는 교사를 택하겠다 대답한다.


이 말을 한 이유는 학기 초 한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아이가 부모에게 선생님이 무섭다고 했단다. 그렇다면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물었어어 한다. 이 양육자는 앞뒤 상황도 묻지 않고 전화부터 걸어온 것이다.

학기 초 교실은 야생이었다. 수업시간이 되어도 쉬는 시간이 이어졌다. 기다려도 주의를 주어도 책상에 앉을 생각을 안 했다. 수업 도중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반대편 친구에게 향한다. 왜 그곳으로 갔는지 물으니 할 말이 생각나서 그랬다 한다. 정말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지 싶었다.

단호하게 제지하지 않고서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학부모에게 이런 교실 상황을 설명했고 그대로 내버려 두기를 원하시는지 되물었다. 그제야 꼬리를 내리는 목소리였다.

과적으로 이 아이는 내 팔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나를 아빠라 불렀다. 진짜 아빠가 서운하시겠다 말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상담기간이 되어 내가 거꾸로 양육자에게 너무 가깝게 다가와 걱정이라 했다. 이 학부모는 선생님이 좋다고 아이가 말했다 하면서 고맙다 했다. '무섭다와 좋다' 이 기온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아리송했다.


새로움과의 조우는 익숙한 친숙함을 선호하는 본능적 특성상 늘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잠깐 두고 보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두꺼운 고기를 구운 뒤에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레스팅이다. 겉면의 뜨거운 온도가 중앙까지 고르게 퍼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만나자마자 마음에 들었다면 그건 호감을 넘어선 반함이다. 그런 일이 흔할까?

아이들은 낯섦에 칭얼거릴 수 있다. 이때

모라면 들어주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냄비처럼 같이 끓어올라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그 누구도 아닌 당신들의 자녀가 지켜보고 있다. 아이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부모에게 가스라이팅을 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부모가 안정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니 자녀 또한 다르지 않게 된다.


기다림과 안정감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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