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낸 하루, 다시 채워지는 나

by 선율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는다. 해야 할 일도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이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뭔가 충만한 기분이 든다.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쓴 것 같은 기분, 낭비가 아니라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있다. 나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그 하루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어딘가가 풀어지는 기분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가득 채워야만 의미 있는 하루'를 살아왔다. 계획을 짜고, 알람을 맞추고, 생산성을 체크하고, 스스로에게 효율이 떨어졌다며 채찍질하며 살았다. 그렇게 시간을 단단히 조이고 살아가는 동안, 나는 ‘쉬는 법’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꼭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는 날. 혼자 커피를 내려 마시고, 햇살 아래에서 조용히 책 한 권을 펼쳐 읽는 그런 날. 계획도 없고 결과도 없는 하루. 그저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는 날. 그런 날이야말로 나를 다시 회복시키는 시간이 아닐까.


나는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을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하루가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나는 더 잘 웃고, 더 깊이 숨 쉬고, 더 가볍게 잠들었다. 마음속 먼지들이 가라앉고, 조용한 물처럼 나의 감정들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비로소 나와 가까워졌다.


우리는 바쁘게 살아야만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는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그 바쁨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삶이 뿌옇게 흐려진다.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나를 잃고, 모든 순간이 '다음'을 위한 준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은 단순한 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날은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오는 시간이다.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그런 하루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는 결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 속엔 내가 있고, 나의 감정이 있고, 나를 회복시키는 고요한 리듬이 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다시 삶을 살아낼 힘을 얻게 된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면, 그것은 내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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