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금 더 다정하게 살 수는 없을까

by 선율

우리도 좀 재미나게 살 수는 없을까.
사는 것이 신바람이 나는 그러한 방법은 없을까.
사람은 혼자만이 재미있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서로 어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알아보고,
가시 울타리도 걷어치우고 살 수 있지 않을까.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바람 나는 삶은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종종 이 질문 앞에서 망설인다. 누군가는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야’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분명히 바라고 있다. 조금 더 가볍고,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는 일상을.


신바람은 누구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다. 혼자서 아무리 웃어도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함께 나눌 수 있는 농담, 눈빛 하나로 전해지는 공감, 다정한 손길에서 오는 따스함. 이 모든 것이 있어야만 진짜 웃음이, 진짜 재미가 찾아온다. 결국 삶의 재미는 ‘우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담장을 세우고, 벽을 쌓는다. 서로의 다름이 상처가 될까 두려워 무심한 척하고, 솔직한 마음은 꼭꼭 숨긴다. 그렇게 가시 울타리는 점점 더 촘촘해지고, 어느새 혼자가 익숙한 삶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김환기의 문장은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가시 울타리를 걷어치우자고. 사람을 사람으로 다시 보자고. 이 말은 누군가를 먼저 받아들이는 용기를 내보자는 제안이다. 그 사람의 배경도, 실수도, 부족함도 함께 껴안으며 바라보는 태도. 그렇게 다시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할 때, 우리 삶에도 비로소 ‘재미’가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차 한 잔을 내어주고, 따뜻한 말을 한 마디 건네는 것.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재미의 시작일지 모른다. 복잡한 인생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어울릴 줄 아는 삶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예술 아닐까.


‘우리도 재미나게 살 수는 없을까?’라는 물음은, 결국 ‘우리가 조금 더 다정해질 수는 없을까?’라는 말과 닮아 있다. 지금 여기서, 서로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어보자. 그리고 삶에 작은 신바람 하나쯤은 불어넣어보자. 혼자가 아니라 함께, 울타리 너머로 건네는 인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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