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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Nov 01. 2020

에필로그를 대신해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 보자는 제안

이 글들은 한국 사회를 문화다양성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며 쓰는 글들이기 때문에 마무리가 따로 없다. 주기별로 계속 당대의 세상을 미디어를 통해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2년 정도 써온 글들 중 차별현장에 대한 내용, 문화다양성 측면에서 공론화시킬 수 있는 글들의 목차를 뽑아보니 내용은 많지 않다. 게을렀다는 말도 되고 오지랖 넓게 여기저기 기웃거렸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다르게 보는 눈을 갖는 건 언제부터일까. 당연했던 어떤 것들이 낯설어질 때 우리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같은 깨달음을 얻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좀 더 많은 기회를 통해 더 많은 공론장이 형성되길 바란다.     


외모에 따라서, 연봉에 따라서, 학벌이나 사는 동네에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차별해온 과거를 생각해 보자. 나보다 좋은 학교에 들어간 지인을 부러워하는 한편 나보다 나은 학교로 가지 못한 반대쪽을 깔보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나보다 연봉이 높은 동창에게 살짝 주눅이 들다가도 비자발적 백수 상황을 이어가는 친구에게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우월감, 자만심, 그로부터 오는 만족감으로 오늘 하루가 내 인생에서 그나마 번듯한 하루가 되는 일을 이제까지 은연중에 해왔다면 앞으로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정말 괜찮은 사람들의 만족감은 상대적이지 않았다. 자신이 세운 목적을 달성한 자신의 모습 자체가 준 만족감은 오롯이 자기만의 몫이더라.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인류의 번영에 이바지할 거라고? 다양성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됐다고 해라. 그런 뜬구름 같은 말은 하나도 설득력이 없다. 그냥 차이를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는 포용적인 나에 대한 만족감 때문에 문화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하는 게 낫다. 이기적 유전자들의 집합인 인간의 이타성은 개인의 존립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내가 있어야 니가 있는 거지 내가 없는데 니가 있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냥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거다. 그리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이미 문화적으로 다양해진 21세기 한국에서 지구 시민으로서의 포지션을 유지하는 거다. 지구 시민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두 지금보다 더 괜찮은 인간이 되어 보자. 

코로나가 창궐하고 지구생태계가 망가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이 모든 현상이 내 인간성의 바닥을 드러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자. 

그래야 언제 어떻게 죽어도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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