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심사>의 제목은 왜 <아라베스크>로 바뀌었을까
난민 인정은 거주하던 곳에서 더이상 거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들을 이런 시스템으로 내몬 자들이 있고 그들이 난민법을 만들었다. 국적,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라는 다섯 가지 사유로 거주지를 떠난 이들만을 국제법에서 난민으로 인정한다. 조금이라도 경제적 이유가 있다거나 본국에서 무력활동을 했거나 환경 재난으로 인한 어려움으로 자발적인 이주를 선택했다면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난민 지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이 불가능해질 때 우리는 떠난다. '더 나은' 곳의 기준은 자의적이다. 난민캠프의 생활보다 나은, 폐허가 된 고향보다 나은, 그곳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몰라도 여기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들은 전재산을, 자신의 몸을, 남은 가족을 브로커에게 맡긴다. 우리가 이들과 다른 점은 그냥 '거기'가 아닌 '여기'에서 태어났다는 우연 하나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난민법을 만들고 출입국법을 강화하며 국경을 통제하는 합리적인(?) 이유다.
기초적인 물음 하나. 아이폰 들고 나이키 신고 비행기 타고 온 난민은 난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한번이라도 지진을 겪어본 이들은 알 텐데. 지진 났을 때 제일 먼저 찾는 게 핸드폰이라는 걸. 그 안에 모든 게 들어있는 건 아프리카나 중동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 그 나라 국경에는 이미 탈출한 이들의 수백, 수천배의 숫자로 '난민 캠프' 내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내는 진짜 난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