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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pr 18. 2020

민족 없는 국가 vs. 국가 없는 민족

쿠웨이트 vs. 바스크

  역사가 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가 법 체계를 갖춘 조직으로 나아가다가 국가로 형성된다는 논리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역사는 발전한다? 과연 그럴까.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공간적 배경이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 총독의 공습으로 무차별 학살이 벌어진 바스크 지방이라는 것까지는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도 이 '바스크'라는 곳이 실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사이에 자리한 '한 나라'였다는 것은 책을 '좀 더' 찾아봐야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근데 스페인의 많은 지역 중에 왜 하필 바스크 지방을 폭격했을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나?


"... 주민의 대부분은 바스크인이며 에우스카라(éuscaro)라는 고유언어를 사용하는데 스페인어와는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다. 바스크 지역의 언어적 특성 때문에 바스크 인들이 다른 지역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인종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이 지역에서 오래된 고대의 언어 형태가 남은 것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바스크인은 인종적, 관습적으로 주변의 프랑스인·에스파냐인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눈썹이 짙고 강한 턱을 가지고 있다. 기질은 용감하고 모험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약 250만 명의 바스크인이 이 지역에 거주한다.


 ...스페인 내전의 결과 프랑코 정부가 들어서자 바스코 지역은 자치권을 상실하고 스페인 정부의 탄압을 받았으며 바스크 독립을 주장하는 많은 바스크인들이 처형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부터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의 요구가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1970년에는 에스파냐 정부의 바스크 민족주의자 처형에 대하여 강력한 반대운동이 일어났으며 ETA(EuskaditaAskatasuna, 자유조국 바스크)라는 단체가 조직되어 무력에 의한 바스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이 단체는 2017년까지 강력한 분리독립 운동가 테러 조직으로 활동했다). 바스크 지역은 광산물이 풍부하며, 빌바오 등의 공업도시가 발달되어 있어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이 지역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세계적인 사회적경제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바스크 [Pais Vasco/Basque Country] (  )는 필자 추가.


  자치주나 자치구는 국가가 이민족을 통합하는 합법적인 방식 - 이민족 입장에서의 동의를 전제하는 건 아니지만 - 이다. 중국의 자치구들인 위구르와 티베트 등이 그랬고 스페인의 바스크가 그렇다. 유럽에서 유태인과 함께 대표적인 인종적 변별성을 갖는다는 바스크인은 독자적인 민족이라고 한다. 뭐, 근데 실은 나도 못 만나봐서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솔직히 유태인도 구분 못하고 이민 2,3세대가 지난 민족들의 유전적 형질이 유지된다는 것도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암튼 바스크는 국경이 생기기 전, 왕조 이전부터 그들 고유의 언어를 쓰고 별도의 전통을 유지하던 그런 공동체였다는 말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공습 대상이 됐던 역사에 대해서는 프랑스와의 국경 지역에 걸쳐진 바스크가 자치령을 넘어 분리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식민지 땅따먹기가 절정에 치달은 19세기말, 20세기 초였다. 분리독립은 커녕 더 많은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 눈엣가시였긴 했겠다. 여기에 히틀러가 동조하면서 무차별 폭격으로 가루가 된 바스크를 피카소는 세상이 모두 울부짖는 공포로 그려냈다. - 그러니까 근대 이후의 폭력은 누군가의 묵인 내지 용인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차별을 부추기는 자들 만큼 무관심으로 동조하는 것 역시 유죄다.


  한국은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하는)이 하나의 나라로 나아가는 선형적인 역사를 가르친다.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왕조 오백년을 지나 지금에 이르는. 옥저, 동예, 마한-변한-진한, 가야국들까지 그냥 선형적 구조 안에 깔끔하게 정리한다. 언어와 관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묻어가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타임 슬립이 가능하다면 삼국시대 때 나라별로 말이 달랐는지, 관습은 어느 정도 공유했는지 정말인지 알아보러 갈 의향도 있다.


  여기서 내가 궁금해진 건 민족과 국가가 세트냐, 하는 부분이었다. 20세기 사람인 나는 단일민족 사상을 내내 주입받은 세대였고 내 윗세대와 아래로 10년쯤 되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민족 구성의 퍼센테이지를 나누는 곳들은 다른 나라들이지 우리는 그렇게 나누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민족은 곧 국가와 동의어로 들렸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민족 없이 갑.툭.튀한 나라 '쿠웨이트'를 발견했다. 쿠웨이트는 빈 사막 땅에 세워진 나라로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버려진 땅이었다. 정착민이 살 수 없는 경작지 제로의 척박한 땅. 수많은 역사적 왕조들이 그 지역을 휩쓸었지만 정주민은 없었던 탓에 땅을 근간으로 하는 다른 민족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현재의 쿠웨이트를 구성하는 민족들은 17세기에 이주해온 아니자족(약 45%, 왕도 아니자족 출신)이 중심이다. 교역을 통해 먹고 살던 이들이 대항해시대 이후 실크로드의 실익이 없어지면서 유목이 아닌 정착을 할 상황에 떠밀리게 되자 할 수 없이 빈 땅인 지금의 쿠웨이트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됐다.


  민족 없이 국가를 이룬 쿠웨이트. 그에 비해 국가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 없는 민족들인 팔레스타인, 바스크, 쿠르드, 티베트. 전근대적인 시대 때 민족으로 존재하던 공동체가 새로운 국제 질서의 등장 이후에 자연스럽게 국가로 전환되는 게 아니었던 거다. 여기에서 필요한 건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에서의 승리였으므로 국가 없는 민족은 실체 없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만약 당신이 바스크 지방의 분리독립운동가라면 어떻겠는가? 조상 땅 내놓으라고 무력으로 점령한 군인들에게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이처럼 체제 내에서 존재에 대한 부정을 경험한 이들이 난민이 된다. 그나마 이러한 국제 질서와 세계 역사 지식에 접근이 가능한 극소수의 배운 자들, 가진 자들이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서 탈출을 감행할 수 있다. 대다수는 세상이 원래 그러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그래왔으니까 묵묵히 견딘다. 자신이 태어난 그 곳 주변의 캠프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내일도 산다.


  우리는, 나는 다행히도 난민의 처지가 되지는 않았다. 순전히 '우연'히 그렇게 된 거다. 우리는 국가, 가족, 시대 그 무엇 하나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21세기에 한국에서 사는 건 우연일 뿐이다. 그러니까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해도 되는데, 그들이 사선을 넘어 우리 이웃이 됐을 때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안 가는 거 아니고 못 가는 거다. 당신이 좋든 싫든 지금 여기에 사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배워서 알만큼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건, 비겁하다.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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