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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가 사라졌다

by 하루마음


여름이가 사라졌다-빈집 모습.jpg © 여름이가 사라진 빈 집



지난해 가을 시작무렵이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거실에 있던 여름이를 방으로 옮겼다. 잠결에 찌지직찌지직 여름이 소리가 들린다. 여름이 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어 비몽사몽간이었지만 단잠이었다. 두어 시간을 잤을까. 자정이 넘었다. 눈을 뜨자마자 여름이 집을 들여다보았다. 여름아, 하며 인사하는 나를 벽에 붙어서 빤히 쳐다본다. 잠깐 사이 횟대에 오줌을 군데군데 싸 놓았다. 횟대가 까만색이라 여름이 오줌 흔적이 더 잘 보인다. 오줌싸개 여름이.


여름이 집은 최대한 청결하게 유지한다. 내가 외출해서 볼 수 없어 치우지 못했다면 모를까, 옆에 있으면 볼 때마다 오줌을 닦아주고 똥을 치워준다. 횟대의 오줌을 닦기 위해 여름이 집 문을 열었다. 어쩐 일로 벽에 가만 붙어 있는다. 손을 넣어 닦으려니 후다닥 움직인다. 그럼 그렇지. 오줌을 닦는데 순간 여름이가 사육장 밖으로 튀어 나갔다. 얼른 잡아서 넣었는데 순식간에 몸을 홱 돌려 다시 튀어나갔다. 빠르게 움직이는 여름이를 보고 아들을 불렀지만 늦었다. 여름이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책장 뒤며 커튼 뒤를 샅샅이 찾아도 없다. 장롱 사이 짐들을 다 뺐지만 거기도 없다. 장롱 뒤와 위를 살폈지만 보이지 않는다. 새벽 2시라 이웃에게 피해가 되니 쿵쿵 두들겨 숨어 있는 여름이를 나오게 할 수도 없다. 여름이를 위해 문을 열었는데 오히려 여름이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결과가 되었다. 여름아, 여름아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아침이 밝으면 장롱을 다 들어내서라도 찾아보겠는데 출근을 해야 하니 걱정이다. 아들은 한 달 반 만에 나온 사례도 있다고 기다려 보자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그저 맥없이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가슴이 조마조마 쿵쾅 쿵쾅. 이 새벽에 대답 없는 여름이만 부른다.


- 여름아~


여름이가 사라졌다-장롱 아래 모습.jpg © 빼꼼, 잠시 나타났다 다시 장롱 아래 안으로 사라졌다


여름이가 나타났다. 새벽 4시 16분. 2시간여만이다. 먹이 집게로 유인을 해도 꿈쩍을 하지 않는다. 먹이를 주는 분홍 숟가락을 가세했다. 숟가락을 보더니 잠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시답잖다. 그럴 수밖에. 여름이는 이틀 전 밥을 잔뜩 먹은 뒤라 지금 배고프지 않다.


아, 야속하게도

여름이는 다시 장롱 아래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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