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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피 껍질을 먹는 이유

by 하루마음





여름이 몸이 허옇다. 조만간 탈피를 할 모양이다. 탈피 시기가 되면 몸이 부쩍 허옇게 된다. 여름이가 탈피를 하는 모습을 딱 한 번 봤다. 여름이는 야행성이다. 나와 생활 리듬이 다르기 때문에 탈피를 언제 하는지 보기 어렵다. 아 그런데 이번에 탈피를 하고 발에 껍질을 매달고 있는 여름이 모습을 보았다. 탈피를 하다 힘에 부쳤을까, 아니면 아직 덜 한 상태에서 내가 보게 된 것일까. 여름이는 탈피를 완전히 하지 않고 다리 쪽에 껍질을 매달고 있었다. 게코가 탈피를 하면 발톱에 남아있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완전히 하지 못한 탈피를 깨끗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여름이가 탈피 껍질을 냠냠.


여름이를 키우고 처음에 탈피를 한 후 자신의 껍질을 먹는 것을 보고 엄청 놀랐다. 여름이가 탈피한 자신의 껍질을 먹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영양분 회수이다. 게코의 탈피 껍질에는 각질, 단백질, 미네랄 등 유용한 영양소가 남아 있다고 한다. 여름이는 자기의 탈피 껍질을 먹음으로써 몸에서 빠져나간 영양분을 재흡수한다. 그러니 탈피껍질을 먹는 행동이 영양분 재흡수로 보면 그리 이상하고 충격적이라 할 수없다. 또한 지금은 반려로 많이 키우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음식이 항상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탈피 껍질을 먹는 행동은 에너지 절약의 하나라고 한다.


둘째는 포식자로부터의 흔적 제거를 위함이다. 야생에서는 탈피한 껍질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흔적이 된다. 껍질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흔적을 없애 포식자의 눈에 띄는 것을 방지하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해서 이 같은 행동은 생존 본능과 관련되었다 할 수 있다. 뭔가를 흘리고 다니는 나는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러고 보면 여름이가 나보다 낫다.


셋째는 청결유지이다. 사육 환경이든 야생이든 껍질이 쌓이면 비위행적일 수 있다. 탈피한 껍질을 먹음으로써 은신처나 주변 환경을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다. 여름이가 스스로 청소를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또한 나보다 낫군! 흠) 여름이는 아주 깨끗하다. 눈꺼풀이 없는 눈이 건조하거나 먼지가 묻었다고 판단되면 긴 혀로 닦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도 늘 여름이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려 애쓴다. 청결해야 기분도 건강도 좋을 테니.





하지만 간혹 탈피 후 껍질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나 건강 문제, 또는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여름이는 한 번도 먹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말이다. 탈피를 한 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껍질이 일부 몸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으니. 특히 발가락이나 꼬리 끝(여름이는 꼬리가 없으니 그럴 일은 없지만)에 남아 있을 경우에는 핀셋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제거해 도움을 준다. 탈피는 습도가 부족하면 제대로 할 수 없으니 평소 25도, 60-80%의 온도와 습도 유지에 신경 써야 한다.


탈피는 껍질이나 가죽을 벗는 일차적인 의미이기도 하지만 내가 처한 일정한 상태나 처지를 벗어나는, 한 뼘 자라는 행위이기도 하다. 현재 상태에서 한 단계 오를 수 있는 탈피. 박완서 작가는 <도시의 흉년>에서 완전한 탈피를 위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여름이도 나도 삶에서 여러 차례의 탈피를 경험하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탈피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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