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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여자 Mar 27. 2022

타로카드는 글 쓰는 기계라고?

타로카드와 소설 

타로 카드 본 적 있어?


내가 타로 카드를 직접 본 건 쇼핑몰 구석에 마련된 작은 타로 가게였어. 

책상 하나 달랑 놓여있고, 나이 지긋하고 온화해 보이는 아줌마가 타로 마스터였어. 

그땐 타로 카드도, 타로 마스터라는 명칭도 몰랐을 때야. 

작가로 살기 막막해서 충동적으로 타로 카드 점을 봤거든. 

물론 사주풀이로 끝났지만. 


그리고 두 번째는 무더운 여름날, 토요일이었어. 

빚쟁이처럼 원고 마감에 쫓겨 커피숍을 가던 중이었지. 

덥기도 하고, 글도 안 써지고, 언제까지 이런 헐값에 글을 써야 하나...

그런 날 있잖아, 일하기 싫은. 

그래서 10분 거리의 커피숍까지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걸어가며 간판을 하나씩 읽었어. 

피아노 학원, 부동산, 카페 입간판에 쓰여 있는 메뉴를 읽다가 보니 '타로 상담'이라는 문구가 보였어. 

올려다보니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지하는 노래방, 1층은 만두전골, 2층은 허브 아로마 마사지와 요가 교습소였거든? 그런데 그곳에 타로 카드 샵이 있을 줄 몰랐지. 일 년 동안 그 앞을 지나다녔는데도 전혀 몰랐거든.

그날따라 '타로 상담'이라는 글귀가 눈에 딱 보이더라고. 

일하기 진짜 싫었나 봐. 

카페로 가던 발걸음을 옮겨 타로 카드 샵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어. 

충동적이었지. 너무 더웠거든. 일하기도 싫고.  

사실 몇 년간 내 질문은 똑같았어. 철학관을 가든, 점집을 가든, 타로 카드 가게를 가든. 


"작가로 살 수 있을까요?"

"재능이 있나요?"

"드라마가 잘 맞나요, 소설이 잘 맞나요?"


사실 답도 알고 있어. 


"응. 네가 마음먹었다면 작가로 살 수는 있어. 다만 돈을 많이 버느냐, 못 버느냐 그게 걱정인 거지?"

"재능도 있어. 다른 직업을 가질 재능도 없잖아? 이제 포기해서 어쩔 건데."

"드라마든 소설이든 써 봐야 알지. 아직 데뷔작도 없는데 무슨 고민이람. 일단 쓰기나 하시지?"


그날도 타로 마스터에게 답이 뻔한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타로 카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뜬금없지? 

마침 타로 마스터는 곧 수업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해서 무작정 강의 등록을 하고 돌아왔어. 

그게 나와 타로 카드의 첫 만남이야. 


타로 마스터가 추천해 준 책을 읽다 보니 해외에서는 타로 카드를 소재로 소설도 쓰고, 창작할 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타로 카드를 이용한다는 구절이 자주 나오더라고.  창의적인 작업을 위한 작가의 소도구로 활용되고.  


타로 카드가 미래를 점치는 점술 도구로만 생각했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 

사실 글 쓰는 기계가 있다면 내가 먼저 살 거야. 600개월 할부라도, 영끌을 해서라도 살 거야. 

이야기가 잘 풀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정말 기분이 좋지만, 

안 써지는 날은 과외라도 받고 싶거든. 

그런데 글 쓰는 기계라니! 


그 말을 한 사람은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야. 

그의 소설 <교차된 운명의 성>은 타로 카드를 활용하여 서사를 완성하는 동시에, 타로 카드가 소설의 주요 소재이기도 해. 

읽어봤냐고? 

당연하지. 

소설에서 사용된 타로 카드는 내가 배우고 있는 유니버설 웨이트 타로 카드가 아니라 그림이 낯설었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는 데는 무리가 없더라고. 


<교차된 운명의 성>은 『타로카드, 베르가모와 뉴욕의 비스콘티 카드』(프랑코 마리아 리치 출판사, 파르마, 1969)에 처음 소개되었다고 해. 이 단행본에는 ‘교차된 운명의 성’과 ‘교차된 운명들의 선술집’이 수록되어 있어. 내가 읽은 건 민음사에서 출간한 『교차된 운명의 성』이야. 이 단행본에 첨부된 ‘메모’를 읽어보면 작가는 각각의 소설을 비스콘티 카드와 마르세유 카드를 활용하여 창작했다고 밝혔어. 

이탈로 칼비노가 소설을 쓸 때 타로 카드를 활용한 건 1968년 7월 우르비노에서 열린 ‘이야기 구조에 대한 국제 세미나’에서 「카드 점(占)의 이야기와 표상들의 언어」를 발표한 파올로 파브리에게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고 해. 

호기심이 많은 작가였나 봐. 

나도 다른 작가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뿐만 아니라, 과거의 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했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 그러다 좋은 방법을 발견하면 적용해 봐. 

작법 책이나 작가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글 쓰는 기술을 얻으려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작업 방식으로 일하는지 궁금해서야. 사실 나도 엄청 호기심이 많거든. 


이쯤 되면 궁금하지? 소설 내용이. 「교차된 운명의 성」말이야. 

혹시 동네 도서관에 있나 확인해 봤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립도서관에는 불행히도...한 권도 없더라고. 

대략적인 설정을 살펴보자면. 


어느 우거진 숲 속 한가운데에서 성 하나가, 여행 중에 밤을 만난 사람, 기사와 귀부인, 왕실의 행렬, 평범한 여행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주고 있어.  여행자인 ‘나’는 밤을 보내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와. 밤이 늦었으니까. 널찍한 홀로 들어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어. 나는 빈자리에 앉았어. 그 자리만 비어 있었거든.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거든.

나는 여독 탓이라 여겨지는 혀의 무력감을 깨뜨리기로 결심했고, “맛있게 드세요!” “아, 마침내!” “놀랍군요!” 같은 감탄사를 큰 소리로 외쳐 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어. 아무리 노력해도 목소리 안 나온 거지. 어쩔 수 없이 침묵 속에서 식사를 끝냈는데, 성주처럼 보이는 사람이 타로 카드를 들고 왔어. 그리고 그 타로 카드로 운명을 점치는 대신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지. 


이 책 여백에는 타로 카드 그림이 삽입돼 있어. 

책을 읽으면서 타로 카드 그림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해.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전에 우선 마르세유 카드를 사용해, 이어지는 장면처럼 보이도록 카드들을 배치하는 작업부터 했다고 해. 카드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작업을 하는 거지. 

우연히 늘어선 카드들에서 어떤 의미 있는 이야기가 떠오르면 그걸 글로 쓴 거야.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대. 

타로 카드를 섞었는데, 그 조합이 소설로 바로 이어지기는 힘들었을 거야. 

이 소설을 읽어보면 가로 세로 이야기들이 교차하거든. 

아무리 타로 카드가 글 쓰는 기계라고 하지만 엄연히 글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게임의 규칙, 일반적인 구조, 서사적 해결책을 바꾸어 보면서 소설을 구상한 거지. 

소설책에 첨부된 작가의 메모를 통해 소설가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타로 카드의 상징적 해석과 카드 점에 관한 문헌이 아주 방대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식했지만, 그것이 내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타로 카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주의 깊게 카드를 바라보고,
거기에서 암시와 연상을 이끌어 내고,
그것을 상상의 도상론(圖像論)에 따라 해석하는 일에 몰두했다.  
글자가 아니라 그림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십자 낱말풀이를 얻었는데,
거기에서 모든 시퀀스를 양방향으로 읽을 수 있었다.

맞아, 이 작가는 타로 카드를 십자 낱말풀이처럼 카드가 교차되는 지점까지 고려해서 소설을 구상했더라고. 

등장인물들이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타로카드를 사용하여 자신들이 겪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거든?  

이때 A가 타로카드 1, 2, 3, 4를 제시해서 이야기를 구성하면, B는 타로카드를 4, 3, 2, 1로 활용하여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 

뭐, 읽어보면 억지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지만...

유명한 작가잖아.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구나...이것만 배워도 남는 장사라고.  

아무튼.

중요한 건 '카드 점에 관한 문헌이 아주 방대하다'는 것과 그래서 '타로 카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주의 깊게' 타로 카드를 바라봤다는 거야. 

무슨 말이냐고?

점술이나 예언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미지, 우리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그림 연상에 주목했다는 거야. 

사실 타로카드에는 다양한 상징과 의미가 있어. 타로 마스터가 되어 내 운명을 엿보거나, 다른 사람의 운명에 조언을 해줘야 한다면 정말 신중해야 해. 

하지만 글 쓸 때 타로 카드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르다는 거야. 물론 타로 카드에 숨겨진 풍부한 상징을 이해하면 좋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그림에 충실하라는 거지.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봐. 누구의 평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잖아. 글씨를 모를 땐, 그림책의 그림만 보고도 이야기를 잘 만들어 냈잖아. 


타로 카드가 글 쓰는 기계라고 했을 때, 정말 궁금했거든?

막상 알고 나니 "아, 맞다! 그런 방법이 있었지!"싶더라고. 

아까 말했지? 글 쓰는 기계는 타로 카드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적어도 타로 카드를 활용하면 끊임없이 쓸 수는 있어. 

AI소설가와는 데이터 용량이 달라서 비교할 수 없지만, 나의 숨겨진 상상력은 충분히 자극할 수 있어. 

아마 AI도 이 방법은 모를걸?


뿐만 아니라 미국의 소설가이자 타로 저술가인 레이첼 폴락의 책을 보면, 타로 카드를 활용하여 음악, 스토리텔링,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마샤 노먼 <점쟁이>, 찰스 윌리엄스 <위대한 트럼프>, 팀 파워 <마지막 통화> 등이 타로 카드를 소재로 적극 활용한 소설인가 봐.  원서로 구매해 놨지만 아직 읽진 못했어. 


이 정도 설명했으면 우리가 뭘 할 건지 알겠지? 

바로 타로 카드를 이용한 재밌는 글쓰기 작업을 할 거야. 

에세이부터 소설 혹은 드라마까지 쓸 수 있어. 

자. 이 수업이 너에게 잘 맞을지...내가 타로 카드 뽑아 줄게. 

이렇게 카드를 셔플 하고, 질문! 타로 카드는 질문이 중요해.

"타로 카드로 글 쓰기 수업이 도움이 될까요?"

맞지, 이 질문?

"오!"

무슨 카드 뽑았게!

"더 월드. THE World."

미안, 영어 발음이 별로였지?



이 수업이 너만의 세계를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거래. 

정말이냐고?

믿고 한 번 타로 카드로 글을 써 봐. 그럼 알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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