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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 사진 속 미국 풍경 보기(2)

한 달에 한 개씩 엄선했습니다.

by 최 콩
6. 12월: 내셔널 트리를 보아요

매해 워싱턴 DC에 있는 ‘엘립스(The Ellipse)’ 공원에 "내셔널 트리(National Christmas Tree)" 불리는 대형 트리를 설치한다. 12월 초에 설치하여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한 달간 상시 개방해 두는데 트리 점등식에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참석하고 전국에 생중계를 해주는 등 12월의 국가 공식 행사이다.

1923년부터 매년 이어져 왔다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이 내셔널 트리는 크리스마스 시즌 워싱턴 DC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방문 장소가 되었다. 큰 내셔널 트리 주변에는 50개의 작은 트리가 빙 둘러져 있는데 이는 미국 50개 주를 상징다고 한다. 우리 가족도 12월 26일 내셔널 트리를 관람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했다. 내셔널 트리는 백악관 바로 옆에 있어 간 김에 철조망 너머 티브이 뉴스에서 워싱턴 특파원의 뉴스 배경이 되는 하얀 백악관 건물도 보고, 50개의 주(state) 트리 중에 우리가 속한 버지니아 트리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어 보았다.

크리스마스 기간 중 워싱턴 DC를 방문한다면 해 질 녘 내셔널 트리와 워싱턴 기념비 앞에서 인증샷 남겨보자.


7. 1월 :스쿨버스 타러 가는 겨울 풍경

미국은 여름방학이 긴 대신 겨울방학이 짧다. 짧은 겨울방학으로 아이들이 불만이 있던 가운데 버지니아에 몇 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이로 인해 학교가 연달아 4일 쉬게 되어 의도치 않게 겨울방학이 길어진 셈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신나 하고 반대로 엄마들의 불만은 쌓인다. ' 이 정도 눈에 학교 휴교라고? 말이 돼?' '한국은 태풍이 와도 정상출근, 정상등교인데?. 지어 지각도 없는데!'

폭설 휴교로 일주일 만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아본다. 아이는 친구와 함께 스쿨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가고 마침 산책 나온 강아지와 견주가 사진의 배경이 되어준다. 어제 신나게 썰매를 탔던 누군가의 빨간 썰매가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한 장에 담긴 1월의 미국스러운 겨울 풍경이다.


8. 2월 : 도시락 전사( Lunch warrior)

나의 미국 생활 중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도시락 싸기이다. 중학생인 둘째의 스쿨버스가 집 앞 정거장에 6시 50분에 와서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6시 40분에는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준비와 도시락 준비로 평일 아침 나의 핸드폰 알람은 5시 20분에 고정되어 있다. 도시락 메뉴가 엄마들에겐 항상 고민인데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오는 메뉴로 돌아가며 싸주고 있다. 한식은 주로 김밥, 볶음밥, 삼각 김밥, 떡볶이 등 이 있고 양식은 샌드위치, 토스트, 미트볼을 넣은 스파게티를 싸준다. 그런데 도시락을 싸다 보면 엄마인 나조차도 너무 맛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의 급식을 생각해 보자. 점심때 시간 맞춰 나온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과 국, 보기만 해도 먹음직한 다양한 식단이 나오는데 반해 새벽에 싼 나의 식어버린 미국 도시락은 내가 보기에도 그리 맛있을 거 같지가 않다. 어도 맛있는 도시락 메뉴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새벽에 분주하게 돈가스를 튀겨 보았다. 다 튀겨서 뿌듯한 마음에 한쪽에 놓고 도시락통에 싸주려고 돈가스를 썰은 순간 아뿔싸! 사진과 같이 돈가스가 설 익은 게 아닌가?. 둘째가 집에서 출발하기 10분 전인데 마음이 마냥 급해진다. 분주하게 프라이팬을 달궈 돈가스의 안 익은 면을 뒤집어 가며 데워서 출발 2분 전에 도시락에 넣어주는 그날의 미션을 완수했다!

2월의 새벽 5시는 칠흑같이 어둡다. 한 번은 주방 전등불이 고장이 나서 가스레인지 후드 빛에 의존해서 도시락을 싸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남편이 어둠 속에 있는 '도시락 전사(Lunch Warrior)'라는 미국식 별명을 붙여 주었다. 국 생활동안 나에게 세 가지 미국식 영어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그중에 도시락 전사가 가장 맘에 든다.


9. 3월 : 도시 안의 스케이트장

3월의 마지막날 우리 가족은 뉴욕에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이 시간에는 야경을 보러 록펠러 센터 위에 있는 전망대에 있어야 하는데 전망대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친절한 직원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야경을 잘 볼 수가 없어요. 오늘은 시야가 90퍼센트 정도 안 보인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당황한 우리는 "그럼 혹시 당일 취소나 환불이 되나요?"라고 물어보자 그 직원은 역시 친절하게 "지하로 내려가서 로 0을 찾으세요, 그분이 담당 매니저거든요" 우리는 지하에서 그 매니저를 만나 환불이 되냐고 물어보자 지금 바로는 안 되고 이메일을 보내면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남편은 바로 이메일을 보냈고 우리는 야경대신 훨씬 저렴한 록펠러 센터 옆에 있는 스케이트장에서 야외 스케이트를 탔다. 미국겨울 풍경하면 도시 곳곳에 야외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우리도 이걸 해보는구나! 그것도 뉴욕에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한 시간 타고 다음날 버지니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록펠러 센터 매니저에게 메일을 받았다. "취소나 환불은 안됩니다. 다른 날을 지정하여서 말씀해 주시면 다시 예약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3월의 뉴욕여행이 마지막 뉴욕여행이 아닌 게 확정된 순간이었다. 덕분에(?)"뉴욕! 다음에 한번 더 봐"


10. 4월 : 당신을 위한 핑크 카펫

4월의 어느 날 친한 언니로부터 점심 식사초대를 받았다. 주로 아파트 촌인 우리 동네와 달리 주택가인 언니네 동네는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를 게스트 공간에 주차를 하고 언니네 집 쪽으로 걸어가려고 모퉁이를 도는 순간 사진과 같은 풍경에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핑크벚꽃의 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치 공주님을 위한 얇은 핑크 담요를 깔아놓은 듯한 이 풍경..

봄꽃은 꽃 봉오리가 연녹색으로 막 올라왔을 때도 만개할 때도, 이렇게 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감동을 주는구나...

몇 년 전 가을 점심시간에 회사 앞을 산책할 때 은행잎이 노랗게 떨어져 있는 길을 걷자니 노란 카펫 위를 걸어가는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을 받았다. " 최 콩! 어깨 펴.. 지금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그럼 미국에서 이 핑크카펫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그건 " 최 콩! 너도 알겠지만 지금 이 시간이 무척 짧아! 최선을 다해 그때그때 누려! 꼭이야!"

이렇게 사진 찍고 감상하느라 약속시간에 5분 늦은 나는 정성스러운 음식과 함께 4월의 봄을 핑크카펫이 들려준 이야기처럼 고스란히 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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