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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Oct 20. 2023

너의 첫걸음

너무나 작고 귀여운 위대한 한걸음

나은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는 어디에 붙여도 뭔가 기억해두어야 할 것만 같은 포스를 풍긴단다. 이를테면 너의 첫 번째 걸음 같은 경우지. 아빠는 늘 상상했어, 너의 첫 번째를 기록해 두는 것을. 그래서 항시 카메라를 대기해두었건만 너의 첫걸음은 찍어두지 못했단다. 정말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거든.


순식간이라고 표현하니, 마치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봐 좀 더 자세히 알려줄게. 너의 첫걸음은 네가 11개월쯤이었단다. 갑자기 분연히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난 너는 한쪽 발을 아주 조금 한 5센티미터 정도 앞으로 내밀었다. 아빠는 그걸 너의 첫걸음마라고 여기기로 했어.


그래 맞아, 어쩌면 그건 단순히 균형을 잡기 위해 네가 움직였던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겠니, 내 눈에는 그 어쩐 걸음보다 위풍당당한 걸음걸이였다. 인류 최초로 달에 첫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발자취와 다를 것이 없었지.


너의 첫걸음마에 엄마 아빠는 환호성을 질렀어. 그림 나은 엄마

솔직히 고백할 게, 아빠는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뭐든 남들보다 잘하려고 노력했어.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뭔가 빠르게 해내거나 적어도 남들만큼은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좀 있는 편이란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이런 것을 보게 되었지. ‘아기 대부분은 생후 1년이 될 무렵(생후 9개월에서 12개월 사이)에 첫걸음을 뗍니다. 첫걸음마 떼는 시기가 좀 늦게 온다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많은 아이가 16개월이나 17개월이 되어서야 걷기도 한답니다.’ *출처 네이버


아빠에게 약간의 조급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마. 그러나 안심해도 된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가 조급증을 부릴 때 경고해 주기로 약속했거든. 네가 한창 인생을 즐겨야 할 때 선행학습이니 뭐니 하면서 널 들들 볶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어. 얼마나 좋은 부모님이니! 아빠가 대학 때 열심히 공부한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소크라테스라는 아저씨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엄마 아빠는 스스로를 알고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으니 너에게 최고의 유년 시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단다.


그런데, 너도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어. 요즘처럼 네가 갑자기 말을 또래보다 빨리 잘해서 엄마 아빠가 놀랄 말을 한다거나, 그림을 그렸는데 그럴싸하게 그려서 할머니가 거실벽에 전시해 두시겠다고 하는 일이 반복되면 곤란해져. 자꾸 네가 천재처럼 느껴지거든. 우리나라 모든 부모가 그런 것처럼 말이야.


그런 찰나에는 여러 감정을 만날 수 있는데, 우선은 사랑스러움이 먼저 달려와. 이거야  영재나 천재가 아니어도 너를 보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야. 두 번째로는 기대감. ‘우리 딸이 영재인가!’ 마지막으로는 걱정이 온다. ‘내가 지금 우리 딸의 재능을 못 알아보고 성장할 기회를 놓치면 어쩌지?’ 솔직히 포털에 영재 검사를 검색해 본 적도 있었단다. 영재원이 어쩌고저쩌고 한참을 보고 나서 엄마 아빠는 결심했어. 네가 영재라고 해도 평범하게 키우기로 말이야.


엄마와 아빠는 평범하게 자랐단다. 잘나고 유명한 사람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그만큼 보통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행복의 절정이 바로 너다. 어떠한 형태의 삶이든 행복이 있겠지만, 네가 선택하게 하고 싶다. 지금을 희생하면서 더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너의 행복 선택권을 우리가 대신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야. 


그러니 엄마 아빠가 학원 숙제 안 하냐고 잔소리하는 순간이 오면 이 글을 내밀고 놀러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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