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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서툴고 어설프지만

by 김요셉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대만에 오고 나선 근처 현지 성당에 꾸준히 다녔다. 처음 성당을 방문한 날에 성당 청년회 회장을 만났고 그때부터 청년회의 일원이 됐다. 매월 셋째 주 주일은 청년회에서 복사를 하게 되는데, 유일한 외국인인 나는 논외였다. 하지만 한 4개월 정도 지났을까? 내가 어느 정도 대만 생활에 적응했다고 보였는지, 조심스럽게 복사단 제의가 들어왔고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복사를 했던 경험은 없었다. 아직은 중국어 실력이 안 돼서 어려울 것 같다고 정중히 거절할 걸 그랬나? 잠깐 후회했지만, 정신을 차리니 미사 당일 아침이 됐다.


나는 그 복사 첫날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손목에 차고 있던 애플워치가 계속해서 내 심박수에 대한 경고를 보낼 정도로 긴장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었고 미사 중 무릎을 꿇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전례복을 밟아 휘청거리는 걸 옆에서 부축을 해주기도 했다. 1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어느덧 해가 바뀌고 반년이 더 지나 대만에 온 지도 1년이 넘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반 고정 멤버, 심지어 사정상 갑자기 인원이 빠지게 되면 급하게 투입되는 대기 인력이 되었다. 어느 달은 한 주만 빼고 모두 복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복사에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자신감도 붙었다.


이 날도 청년회 복사(셋째 주 주일) 외 다른 날 복사가 가능하냐고 물어보길래, ‘아 누가 급하게 펑크 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미사는 아니었다.


그날은 일명 週年堂慶感恩祭典 성당 건립 기념미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사를 진행하는 신부님은 2명, 복사는 6명이나 되었다. 해당 복사단을 총괄하는 분이 역할 배분을 해주었지만, 내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모든 걸 이해할 순 없었다.


매번 신부님 1명 복사 2명이었던 일반적인 미사만 해왔던 나로서는 제단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내가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구나 바깥쪽에 있으면 눈치껏 하면 되는데, 그동안의 미사로 다들 나를 신뢰하는지 나를 제단 중앙으로 배치했다. 미사 내내 우왕좌왕했다. 복사는 신부님을 도와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신부님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너무 죄송스러웠다.


미사가 끝난 후 같이 복사단을 섰던 교우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했지만 다들 웃으면서 천천히 배우면 된다며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사실 대만에 산지가 벌써 1년이 지났고 나는 적응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9월에 개강한 대학원 생활이 조금은 생경하지만 그뿐이라고 자만했었는데.. 아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다.



그래도 조금은..

이 날은 미사도 그렇고 성당에서 조금 특별한 행사를 한다. 園遊會라고 하는데 이걸 뭐라고 번역하면 좋을까? 야유회? 성당 내 공동체들이 각자 맡은 활동들을 준비한다. 직접 만든 간식, 차, 음료 등을 팔거나 여러 가지 체험 진행한다.

청년회에서는 아이들 대상으로 (장난감) 양궁, 카드게임, 물속 유리병에 동전 넣기 등 간단한 체험을 준비했고 각 놀이별 점수에 맞게 카드를 제공하고 인형 등 상품과 교환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물속에 있는 유리병에 동전 넣기‘ 게임을 담당했다. 사실 작년에 동일한 체험을 담당했지만 그때는 대만에 온 지 채 한 달 즈음 지났을 때여서 중국어한 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냥 설명 피켓만 들고 있었고 아무 도움이 되질 못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나는 조금 달라졌다. 내가 직접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체험을 진행했다. 아이들의 중국어는 각각 개성이 강해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지만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나름 잘 진행했다고 본다. 예전에는 나 혹은 상대방(특히 아이)이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면 긴장되고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지금은 웃으며 ‘미안 나 외국인이야’ 하며 대화를 이어갈 정도로 넉살이 좋아졌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청년회 친구가 교대를 해줬다. 나는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동일한 장소의 1년 전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됐고, ‘그 시간 동안 중국어가 늘긴 늘었구나’ 하며 오전 미사 때 있었던 내 실수들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분명 나는 여전히 서툴고 어설프지만,

그래도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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