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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지에 둘러싸인 나

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14

by 시나브로

글 쓰는 일이 점점 좋아졌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글을 쓰곤 했다. 순간순간의 감정과 기분을 담은 글이었기에, 그것들이 모이면 ‘진짜 나’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쓴 글을 점검하거나 돌아보기보다는 ‘생산’에만 집중하게 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어떤 글을 블로그에 쓸까?”라는 생각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 여유가 생긴 어느 날, 내가 이전에 썼던 글 몇 편을 다시 읽어보았다. 잘 썼다는 느낌보다는, ‘잘 쓰려고 애쓴 흔적’이 더 느껴졌다. 과하게 화장한 글 같았다.


나를 중심에 둔 글이라기보다는 정확히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독자’를 향해 어딘가 자랑이 섞인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글은 마치 포장지에 둘러싸여 있었다. 두껍고 화려한 포장지로 감싸인 글이었다. 선물을 받을 때, 포장지를 뜯는 설렘은 결국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향해 있는 것인데, 나는 포장지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썼던 것 같다. 포장지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내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내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고자 했던 바가 나조차도 잘 파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더더욱 관심을 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 문득, 글을 써보는 일도 독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써보고, 그렇게 쌓인 글이 많아지면 지혜도 함께 쌓이지 않을까 싶었다.


글쓰기는 독서와는 조금 다르다. 독서는 읽고 생각하는 영역이라면, 글쓰기는 그 생각을 ‘직접 생산’해내는 일이다. 생각의 산물이 곧 글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많이 했다 해도, 그 생각을 어떻게 독자나 상대에게 전달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글은 소통의 매체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과거에 쓴 글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문득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기록으로 남긴다는 일의 무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는 당당하게 남긴 글이, 시간이 흐르면 부끄러움을 동반할 수도 있다. 반대로, 예전에 ‘형편없다’고 느꼈던 글은 지금 와서 보면 “괜찮았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글이란 것은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쓰고, 계속 돌아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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