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15
처음에는 글을 쓴다면 어떻게든 결말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가며, 꾸역꾸역 문장을 채워넣곤 했다.
그렇게 써낸 글은 분량은 많았지만, 정작 중심이 되는 주제는 흐려지기 일쑤였다.
결국 고이 모셔두기만 한, 미완성의 글들이 여러 편 남았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몇 편의 글을 썼다.
그 안에는 ‘아무도 몰라도 나만 아는 멋짐’을 슬쩍 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엔 정성을 들여 썼던 글도 어느 순간부터는 ‘개수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 되어,
점점 문장의 농도가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미술 시간이 떠올랐다. 한정된 물감으로 수채화를 그려야 할 때,
욕심을 부려 물을 계속 섞다 보면 색이 점점 옅어지기 마련이다.
채우려는 욕심이 오히려 본래의 색을 지워버린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가득 채우려 할수록 비어가는 기분. 그래서 문득 '여백의 미'라는 말을 떠올렸다.
여백을 남김으로써 오히려 채워진 부분을 강조하는 표현처럼,
글에도 비우고 덜어내는 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미완성이라고만 여겼던 글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미완이라기보다는, 잔잔한 여운으로 끝난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름 괜찮았다.
글을 완성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마지막에 마침표가 있어야만 완성일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글을 쓴 사람이 “이건 완성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완성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혹여 하나의 글로는 다 설명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건 다른 글이나 매체로 보완하면 될 일이다.
글뿐 아니라,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도 ‘완성’이라는 실체 없는 완벽에 집착할 때가 있다.
(솔직히, 지금도 그럴 때가 있다.)
물론 완벽히 끝을 내야 하는 일들도 있기에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미완’이라는 상태를 ‘잔잔한 여운’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