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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선 May 03. 2024

프롤로그

 

"AMH 수치 0.01. 난자 공여를 알아보세요"


의사의 이 말이 시작이었다.


내 나이 마흔, 와이프는 서른여섯. 우리는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그리고 '곰 세 마리'의 그 동요 가사,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처럼 곧 귀여운 아기가 찾아오고 앞으로도 으쓱으쓱 잘 살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1년 여가 지난 후,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손님을 마중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난임이었다.


'난소 기능 저하기인의 AMH수치 0.01의 폐경 수치'


처음에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순진하게도 우리는 그 고통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한 걸음, 두 걸음 내 딛이면 그 끝은 세 걸음, 네 걸음 더 빠르게 도망가기만 했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 끝이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동굴 속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장장 6년이었다.

우리는 6년 동안 열일곱 번의 난임 시술을 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이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 글은 난임의 시작부터 끝, 그 과정들을 기록한 것이다.


 


'AMH 0.01'

'난소 기능 저하'

'시험관 16번'

'인공 수정 1번'

'공난포'

'신선 배아 수정 실패'

'동결 배아 해동 실패'

'자궁 내시경 2회'

'나팔관 조영술 2회'

'자궁 내 복수'

'난관 절제 수술'


그리고 열일곱 번의 난임 시술에서 1차 피검 수치(HCG) 10.73이라는 동굴 끄뜨머리에서 들어오는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빛을 쫓아 그동안 가보지 못 한 길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우리에게 그 낯선 길은 때로는 설레는 소풍길이기도 하고, 가끔은 두려운 초행길이이고 했다.


'이식 10일, 1차 피검 수치 10.73'

'이식 12일, 2차 피검 수치 44.3'

'이식 14일, 3차 피검 수치 145.97'

'임신 13주, 니프티 검사 1차 판독 불가'

'임신 15주, 니프티 검사 2차 판독 불가'

'임신 16주, 양수 검사 1차(비배양) 판독 불가'

'임신 27주, 2일 1차 하혈'

'임신 27주, 5일 2차 하혈'

'임신 31주, 6일 낙상'

'임신 34주, 3일 임신성 고혈압'


그리고 임신 38주 2일 오전 10시46분.

'곰 세 마리'의 그 꿈이 이루어졌다. 내 딸 시은이가 태어났다.

그때 내 나이 마흔일곱, 와이프는 마흔셋이었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6년 동안의 우리 경험이 50만 난임 부부들에게 교과서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참고서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이다.


'배아 이식 후 임태기는 하지 말 것'

'착상 실패하면 어디론가 떠날 것'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지 말 것'

'남편은 운동할 것'

'반려동물을 키우면 행복해짐'

'돈 안 드는 미신은 해봐도 괜찮음'


두 번째는 난임과 출산에 관련된 지식을 각 과정마다 아주 쉽게 정리했다. 특히 임신, 출산에 대해 잘 모르는 남편들에게는 지식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여성의 나팔관을 금관 악기로 알고 있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다가 세 번째 시험관 시술을 계기로 뭐라도 알아야 와이프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난임 공부를 했다. 공부랍시고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저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난임, 임신 관련 지식을 찾아보고 하나로 묶어 정리했다.


난임의 정의를 시작으로 AMH의 의미, 시험관아기시술 및 인공수정 과정 등 난임 관련 지식 27개와 HCG 수치, 아기집, 난황, 니프티, 양수 검사 등 임신 관련 지식 13개를 묶었다.


세 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우리 시은이때문이다.

시은이가 커서 언젠가 이 세상의 역경을 처음 마주하게 될 때 이  이 글을 다 보여 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천사들이 우리 시은이의 첫 울음소리를 듣기를 얼마나 바랐는지를.

나는 처음에는 와이프에게 그 6년간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 모든 일들을 글로 남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와이프는 하루라도 빨리 그 기억을 잊고 싶다고 했다. 다시는 그 고통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기억하려고 하는데 와이프는 잊으려고 했다. 어찌 보면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보다 와이프에게는 그 아픔이 백만 배쯤은 더 컸을 터이니.

하지만 내 딸 시은이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아픔이 아니고 축복이기에 조금은 덜 아픈 내가 와이프를 대신하여 그 모든 것들을 글로 남기게 되었다.


"내 딸 시은아.

이 세상 모두는 우리 시은이가 태어나기만을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단다.

그러니 이 세상이 우리 아가를 잠시 힘들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넘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 세상은 우리 시은의 탄생을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아가의 그 소중한 인생을 끝까지 지켜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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