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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Nov 08. 2019

위로의 순간

고꾸라질 뻔 한 나를 단단히 붙잡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삶이란 것을 달짝지근하고도 아기자기한 것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 그런 이의 곁에 있으면 나도 예쁘게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긴다. 얇은 손가락으로 세상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면서, 단정하고 꼼꼼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물씬 드는 것이다.


  요즘에는 유튜브로 다양한 사람들의 ‘브이로그(Vlog)’를 보며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자신의 일상을 정성껏 담아낸 영상을 보면서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균형을 맞추며 잘 지내고 있는 걸까, 하고.


  곁에 있는 이들이나 영상 너머에 있는 이들의 일상을 눈으로 좇으며 좋은 영향을 받고 나면 나도 나의 글을 쓰고, 따듯한 차를 마시고, 시를 읊는 듯한 노래를 듣는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음식을 직접 해 먹기도 한다. 나를 사랑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위해서 시간을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열심히 데워놓은 삶의 온도는 불시에 차가워지곤 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에 그렇다. 숫자와 관련된 생각이 스며들면 특히.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나 새벽에는 낮아진 기온만큼 나의 마음도 차갑게 식어버린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생각을 쉽게 내려놓는다. 낭만이 사치로 느껴지고, 희망이 철없는 생각처럼 여겨지고, 고단한 나의 마음을 보듬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힘들어도 꿋꿋이,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좋아하는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하는 건 아닐까, 비록 지쳤더라도 지금은 쉬어가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우선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럴 때면 다시 시작점에 서는 기분이다. 다시 삶의 온도를 데워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껴안고. 홀로 나의 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허물어진 마음을 다시 세우고 구멍 난 감정을 찬찬히 메우곤 한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장난감 블록 쌓듯이 하나하나 쌓아나가야 한다. 무너지지 않도록 손끝으로 꾹꾹 눌러가면서. 그런데 삶이 참 얄궂은 것은 나의 삶을 쌓아가는 건 나 자신이지만 곁에 있는 이들의 한마디 말이 삶을 지탱하는 튼튼한 지지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쌀알을 하나하나 골라내며 고민을 하지만, 결국엔 같은 포대에 있는 쌀알인걸. 너의 삶이 아주 다르게 흘러가거나 잘못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옆에서 보기에는 너의 길대로 쭉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친구의 한 마디에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한 번은 저녁 무렵 당산역에서 합정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2호선에 탄 적이 있다. 퇴근길이라 열차에는 사람이 빼곡했고 다들 조금은 지쳐 보였다. 그때 살짝 긴장한 차장님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창밖에 한강의 야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감상해보시면 어떨까요…”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어떤 선택을 하든지 본인이 원해서 한 선택이라면 틀린 선택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힘든 일이 있으셨다면 내리실 때 이 열차에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리시길 바랍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나는 예기치 못한 위로에 뜨거운 게 목구멍에서 울컥 올라오는 걸 느꼈다. 한강의 풍경은 유난히 다정했고, 그 순간은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아 힘들 때 나를 도닥여주곤 한다.


  이토록 다정한 사람들. 삶을 예쁘게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 이런 위로의 순간들이 고꾸라질 뻔한 나를 자꾸만 단단히 붙잡곤 한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이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에너지들이 모여서,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결국엔 달짝지근하고 아기자기한 삶이 되는 것이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삶을 마구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파란 하늘이나 예쁜 구름도 위로의 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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