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알아서 비켜 가세요' 했다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길을 가다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마주치면 어설프게 피하기보다는 그 자리에 멈춰서는 오랜 버릇이 있다. 피하려다가 도리어 부딪힐 뻔한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사람과 마음이 통하면 부딪히는 거다. 그래서 마주쳤을 때는 ‘알아서 비켜 가세요’ 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된다. 그럼 상대방은 알아서 잘 피해 지나간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그래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었던 것 같다. 핸들을 어디로 꺾어야 할지 그 짧은 순간에 선택하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잠시 선택을 보류하고 상대를 무사히 지나 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사는 동안에 마주치는 온갖 사건이나 사람들은 그렇게 보내기 쉽지 않다. 갑자기 내 앞으로 달려올 때는 급한 마음에 어떤 방향으로든 틀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충동적으로, 급작스럽게 인생에 있어 중요한 부분들을 결정했던 적이 많았다.
마음이 통하면 사고가 난다. 정말로 그렇다. 사랑도, 일도 좋아서 끌리는 대로 선택했을 뿐인데 사고처럼 내 인생에 큰 자국을 남기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내가 좀 더 단단하지 않았을 때, 여유란 것이 없을 때 유독 그렇게 되곤 했다. 모든 선택을 그랬다는 것도 아니고, 그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그저 비켜 갈 수 있었던 것들은 ‘알아서 비켜 가세요’ 하며 무사히 보냈어도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순간의 감정으로 무언가를 선택하기보다는 깊은 고민 후에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인생은 타이밍이기 때문에 고민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덩달아 많아졌다. 찰나의 순간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아니면 그 자리에 서서 안전히 스쳐 지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오래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으로 미룬 결정도 많았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현재에 충실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에 급급했다.
이십 대의 마지막에 서 있는 지금의 나는,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이제는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움직여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제자리에 서서 영영 고민만 하다가는 나에게 달려오는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마주치더라도 알아서 비켜 가게 뒀다가는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지만, 전환점은 없는 평탄한 인생.
조심은 길에서나 하고, 인생에서는 조금 더 과감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하고 싶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