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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Oct 17. 2019

독이 오른 마음, 잘 털어내기

얼룩처럼 남기고 싶지 않은 감정들.


  나는 옷에 묻은 얼룩을 대충 닦아내곤 하는데, 이 방법은 자국을 더 깊게 남기곤 했다. 언뜻 보기에는 털털한 행동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보며 그때 왜 더 잘, 확실히 닦아내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식이었다. 자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완전히 하나가 돼 버린다. 여러 번 빨아도 마찬가지다. 결국 아끼던 옷도 잠옷이 되거나 당장 버리기엔 아까워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다가 잊히고 결국엔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가슴팍에 빨갛게 물든 김칫국물을 보며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옷에 묻은 얼룩이 잘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독이 묻은 마음을 닦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옷에 묻은 얼룩이야 어떤 걸 묻혔느냐에 따라 지워내는 방법도 가지각색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묻었는지도 모를 마음의 독을 잘 닦아내는 방법이란 게 정해져 있을 리 없다. 정답은 없다지만 마음은 겨울 외투보다는 더 소중한 것이니까 대충 닦아내고 대충 털어내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마음을 물들인 지저분한 감정의 얼룩들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주로 뭘 묻히는지, 안 닦아내고 대충 넘어간 얼룩은 뭐가 있는지. 바쁘게 살다 보니 뻔히 묻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내가 참아야지, 웃어넘겨야지 하며 무시했던 적이 많았다. 나의 속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내고 헤아리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마음에 담아두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이 묻어두고 살았다. 감정을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마음속에 고이게 두었다. 어떻게 보면,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남이 나에게 묻힌 얼룩보다 내가 자신에게 흘린 얼룩이 더 많았던 것이다. 나에게 가슴 아픈 말을 던진 이보다도 그 말을 듣고도 나를 살피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찰나에 스쳐가는 나의 마음속 목소리도 한 번 더 곱씹기로 했고, 내뱉지 못하고 넘긴 말들이 응어리가 되지 않도록 잘 풀어서 분명하게 전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에만 담아두고 나중으로 미루지 않기로 했다. 슬플 땐 제대로 울고 기쁠 땐 아낌없이 웃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감정을 마주할 때 쭈뼛거리지 않기로 했다. 


  발현되지 못한 채 어물쩍 넘겨버린 낯 낯의 감정들을 지워지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얼룩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 마음에 진한 감정들이 고이고 고여 진한 얼룩으로 스며들어 결국 지워낼 수 없는 자국이 되지 않도록.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기로 했다. 바로 지워야 되는 얼룩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바로 지워내기로 했다.


마음이 독으로 얼룩졌을 때 바라봤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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