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야 Nov 07. 2019

그 사람의 향기

어쩌면, 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던 이유.



  그에게서는 진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다. 그가 머물렀던 자리엔 항상 그 향기가 남아있었다. 코를 간질이는 듯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그리고 그 끝은 상쾌한 그런 향이었다. 향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코튼향인지, 꽃향기가 섞인 건지 종잡을 순 없다. 어떻게 보면 참 흔하게 맡아봤던 향기였다. 그런데도 설명하기 어려운 건 그 향을 떠올리려고 하면 잘 생각이 나질 않기 때문이다. 오직 그의 곁에 가면 ‘그래, 이 향이었지.’ 하는 것이다.


  그에게서 진하게 풍겨오는 향기를 처음 맡았을 때는 그와는 안 어울리는 향이라고 생각했다. 퉁명스럽고 까칠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 세심한 배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굳이 자신의 불만이나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런 이미지의 그와 그에게서 풍기는 향은 이질적이었다. 사실 나의 고정관념 인지도 모른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다는 게 맞는 걸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도, 배려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을 챙기는 것에 생색을 내지 않았을 뿐이고, 속마음을 숨기며 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 솔직한 성격이었을 뿐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짐작한 대로 내가 그린 이미지에 그를 가둬둔 건 아닌가, 싶었을 때 내 눈에 담긴 그의 표정은 한결 부드럽고 따뜻했다. 항상 그 표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그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뿐.


  이제 그 향기가 정말 그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나의 고정관념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향기 때문에 그를 한 번 더 보게 됐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꼭 내가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라서가 아니고, 정말 좋은 향기를 뿜는 사람이라서.



이전 18화 마음이 통하면 사고가 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