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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Mar 11. 2019

터널을 걷다


쪽빛으로 물든 하늘이 유난히 창백해 보이던 저녁. 

이제는 정말 끝이라고, 끝에서도 끝에 선 거라고 나를 다그치며 걸었다. 

낭떠러지를 향해 걷는 심정이었다. 


스치는 풍경이나 아무 의미 없는 모든 것들마저도 내 가슴에 구덩이를 팠다. 

빛이 들어갈 틈조차 없는 어두운 터널이 만들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걷고 또 걸어도 제자리인 것만 같았다. 


마음 어딘가에 한 번도 건드려보지 않았던 구석을 직시하고, 서늘해짐을 느끼고, 

그곳에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새기는 기분이었다. 

심연에 닿아있는 공포가 나의 불쾌감을 조명처럼 껐다 켰다 반복했다. 


정말이지, 새로운 감정이었다. 눈물이 쏟아질 만큼 슬프거나 하지도 않았다. 

충분히 이런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은 든다.

하지만 어느덧 자리 잡은 어둠은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통행이 금지된 터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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