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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Nov 02. 2019

빠져 죽을 것을 알아도

마음은 깊어지는데 왜 우리는 멀어졌을까.



깊어진 만큼 멀어진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래서 가끔은 겁이 나기도 했다.

사위가 어두워져 앞뒤도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깊어진다면.

위가 아래인지 아래가 위인지도 모르고 부유하게 된다면.


우리의 거리는 가늠이 안 된다.

너는 수면 위에서 찰방찰방 물장구치며 내려다보고 있는 걸까.

이미 나는 너의 시야에서 벗어난 걸까.

이토록 깊어졌는데 왜 우리는 멀어진 걸까.

질문을 내뱉는 입술 사이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숨이 막히고 만다.


여기까지 내려오려던 건 아니었는데.

힘껏 손과 발을 저으며 버둥거려 봐도 소용이 없다.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귀에는 생생히 너의 물장구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걸 안다.

숨을 쉬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손발이 차갑게 얼어붙지만 얕은 곳으로 떠오를까 불안해하는 나를 안다.


검푸른 물결 속에서 뜬금없이 너의 하얀 팔이 나타난다면.

그 팔에 매달려 차가운 몸을 껴안을 수만 있다면.

속절없이 밑으로, 밑으로 깊어진대도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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